[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역사 속 천재들은 '괴짜'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야 했기에 남들과 소통하는 법을 몰랐고 성격이 안 좋은 사람도 많았다.
그 결과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큰 업적을 이뤘지만 이들에게 '솔로'라는 공통점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유튜브 채널 '랭킹 TOP'에는 '역사 속 모태솔로 TOP10'이라는 제목으로 10명의 위인을 소개했다.
이 중에는 사랑에 투자하는 시간도 아깝다며 일에 빠져 산 위인들도 있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혼자 살게 된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역사 속에 이름 남겼지만, 결국 이번 생에 사랑은 이루지 못한 역사 속 위인들을 소개한다.
1. 미하일로 톨로토스
모솔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 수도승 미하일로 톨로토스는 태어나서 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를 낳은 어머니가 출산으로 사망했고 그다음 날 그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원에 보내진다.
그는 자라서도 종교에 잘 맞아서 수도승으로 잘 지냈다.
고립무원 수준의 높은 산에 높은 벽을 둘러쳐 자리 잡은 수도원이기에 창밖으로도 지나가는 여자를 못 볼 거주 환경에다 해당 수도원에는 여자가 방문조차 못 하는 규정이 있었다.
수도원에 반입하는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암컷이면 들여오지 못하는 강력한 규정이 있었다.
역사상 여자를 한번도 본적없는 유일한 남자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만능 예술로 그림, 건축, 과학,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결혼은 물론 하지 않았지만, 그 시대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성애자로 유명하다.
그는 자코모라는 남자와 28년 동안 동거했다.
어느 날, 피렌체 당국에 네 명의 동성애자를 고발하는 투서가 날아들었는데 여기에 다빈치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시대 동성애는 중죄에 속했고 화형까지 가능했지만, 예술가들 사이에 동성애가 하도 만연해서 당국도 사실상 묵인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심오한 철학적 삶을 살려는 사람들은 결혼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빈치가 동성애자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여성도 사랑하는 양성애자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로, 염세주의 철학을 확립했다.
그의 부친은 매우 부유한 무역 상인이었고, 쇼펜하우어가 상속받은 유산의 액수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도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결혼한다는 것은 권리를 반감시키고 의무를 배가시킨다. 그리고 여자보다 개가 좋다"라는 말을 남겼다.
4. 임마누엘 칸트
비판철학을 통해 서양 근대철학을 종합한 철학자로 근세 철학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명성이나 권력을 구하지도 않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적도 없었으며 결혼을 한 적도 없었다. 그의 삶은 단조로웠다.
5.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 동화 작가 겸 수학자다.
그 밖의 주요작품으로는 '스나크 사냥 The Hunting of the Snark'(1876), '실비와 브루노 Sylvie and Bruno'(2권, 1889∼1893) 등과 시집이 있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좋아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졌다.
그의 모든 표현은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6. 알프레드 노벨
다이너마이트의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은 스웨덴의 발명가 겸 기업가·노벨상 창설자이다.
막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노벨은 평생 독신이었다.
43세 때에 빈에서 알게 된 20세의 소피 헤스와 18년간 내연 관계였지만, 그녀의 사치와 방종에 실망한 나머지 결국 인연을 끊고 말았다.
노벨 사후에도 소피는 그의 유산을 노리고 둘 사이의 연애편지를 공개하겠다며 소동을 벌인 바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나거나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마다했으며, 심지어 자기 사진이나 초상화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것도 싫어했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사교 모임도 멀리한 노벨은 "그 시대의 가장 소박한 갑부"로 통했다.
7. 아이작 뉴턴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근대이론과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뉴턴은 수학에서는 미적분법을 창시하고, 물리학에서는 뉴턴역학의 체계를 확립했다.
뉴턴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홀로 산 것으로 유명한데, 거의 연애조차 해 본 일이 없다. 그 이유가 모성 결핍이 원인이라는 학자들의 추정도 있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뉴턴은 어릴 때는 건강하지 못했다.
그가 만 3살이 됐을 때 그의 어머니는 병약한 아들을 외할머니 손에 맡기고 노스 위즈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스미스라는 목사와 재혼했다.
외할머니랑 살게 된 뉴턴은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으로 상처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은 뉴턴은 고백록과 같은 노트를 쓰곤 했는데 그 노트에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나타난 글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의붓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협하고, 그들과 그들의 집을 불태울 것이다', '죽음을 원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일어나기를 바랐다' 등의 내용처럼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뉴턴은 내성적으로 자라 말이 없었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일에 빠져 살았다.
8. 아담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는 영국의 정치경제학자·도덕 철학자로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이다.
세관 관리 집안에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어머니와 지냈다.
그는 수줍음을 잘 타고 혼잣말을 하며, 뻐드렁이에 고개를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솔로로 생을 마감하게 된 그의 결정적인 이유는 마마보이였다.
9. 라이트 형제
미국의 비행기 최고 제작자이자 항공계의 개척자 오빌(Orville) 라이트와 윌버(Wilbur) 라이트 형제다.
두 형제 모두 결혼하지 않았다.
형 윌버는 생전 "부인과 항공기 모두를 위한 시간은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12년 4월 보스턴으로 사업 출장을 다녀온 뒤로 장티푸스 형 열에 시달리다 5월 30일, 라이트가의 집에서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동생인 오빌은 1948년 1월 30일 두 번째 심장마비 이후에 죽었으며, 그는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부터 초음속 비행의 시작까지 살았다.
10.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딛고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독일의 클래식 작곡가다.
특유의 까탈스럽고 불같은 성격 때문에 '괴팍한 천재'의 대명사로도 잘 알려진 베토벤에게도 결혼하려던 여자가 있었다.
베토벤의 유명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이기도 한 여인의 이름은 테레제 브룬스비크다.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로 부유한 대지주 백작의 딸이었다.
두 사람은 눈이 맞아 약혼까지 하지만 테레제의 집안은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했고, 결국 테레제는 다른 곳으로 강제 시집을 가게 된다.
베토벤은 결혼 실패 후 독신으로 살았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