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장례비만 남기고 '2억 5천' 기부하고 떠난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내가 돈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어려운 남에게 돈을 주는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난 23일 오전 8시께 노환으로 별세한 김군자 할머니는 앞서 2000년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지원금 등을 모아 5천만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서의 설움보다 배우지 못한 설움이 컸다"며 "장례식 비용 5백만원만 남기고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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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김 할머니는 2006년 또 한 번 아름다운 재단에 5천만원을 기부한다.


이때 시민 7백여명이 할머니의 뜻에 동참하면서 당시 '김군자 할머니기금'은 약 11억원까지 불었다.


이후 2015년 5월 김 할머니는 그동안 모아둔 전재산 1억 5천만원을 마저 평소 다니던 경기도 광주시 퇴촌성당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수중에 단돈 40만원이 남았지만 김 할머니는 "내가 돈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어려운 남에게 돈을 주는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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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눔의 삶'을 실천해온 김 할머니의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고령에도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해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2007년에는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 지옥과 같았던 위안부 당시의 생활을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김 할머니는 단 하나의 소원이었던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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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7살이었던 1942년 심부름인 줄 알고 집을 나섰다가 중국 지린선 훈춘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으며 그때 당한 구타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밥장사, 옷장사, 식모살이, 노점상 등 억척같이 일을 하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오는 25일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오늘(23일) 별세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 4분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