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문지영 기자 = "민정수석이 검찰의 수사를 지휘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첫 민정수석으로 임용된 조국(53)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용 당일부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겨냥한 '사이다'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조국 민정수석은 참여정부의 이호철 민정수석에 이어 법조인, 검찰 출신이 아닌 두 번째 민정수석이다.
법조계 경력은 없지만 법대 교수로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데다 뚜렷한 개혁 성향을 가진 조 수석이어서 문 대통령의 이번 선택은 '검찰 개혁' 의지가 강하게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조 수석은 그간 서울대 로스쿨 교수로서 후학양성과 사회참여를 병행했고, SNS를 통해 정치·사회적 소신을 드러내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2014년 한 방송에서 "조국은 너무 완벽해서 라이벌이라 할 수도 없다"며 "얼굴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데 인간성까지 좋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조국 민정수석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몇 가지를 살펴봤다.
1. 만 16세에 서울대 법과대학 '최연소' 입학
조 수석은 1982년 당시 만 16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그의 임용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조 수석이 과거 '사법고시에 떨어졌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유언비어였다.
조 수석은 지난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법고시에 응시한 적 없다"고 직접 밝혔기 때문. 그는 대학 재학 당시 경찰서에 끌려가 두들겨 맞은 뒤 독재 정권 산하의 사법 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소신을 드러낸 바 있다.
2. 만 26세에 울산대 교수로 임용
사법고시를 거부한 조 수석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1992년 최연소 만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최연소 울산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와 관련 조 수석은 "대학생 때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사법 시험을 보지 않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3. '조국'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것
'조국'.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토록 독특한 조 수석의 이름은 친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것이라고 알려졌다.
조 수석은 과거 "집안의 항렬자인 '현'자도 넣지 않고 외자 이름으로 지어주셨다"라며 "모험을 하신 거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조국'이라는 이름이 부담이 됐고, 그 부담을 감당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학문적 성취를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4. 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다
부산 출신 조 수석은 SNS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임을 누누이 밝혀왔다.
조 수석은 "롯데 자이언츠는 재벌 기업 '롯데' 것이 아닌 부산 시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롯데 그룹의 행태에는 불만이 많지만 야구 자체는 사랑하는 이중 감정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13년에는 트위터에 "'롯데 자이언츠'가 시민들의 협동조합으로 바뀌어 '부산 자이언츠'가 되는 것을 꿈꾸어 본다"라는 멘션을 남겼었다.
5. 대학시절 만난 '첫사랑'과 결혼
조 수석의 아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 없지만 대학시절 만난 첫사랑과 결혼했다고 전해진다.
조 수석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고 있다.
6. "대학시절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
조 수석과 서울대 82학번 동기이자 '절친'이었던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국보다 조국 아버지가 훨씬 더 멋있고 호남이셨다"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
김 교수는 "대학시절 그의 잘생긴 외모가 이화여대 등 다른 학교까지 알려질 정도였지만 정작 본인은 별 관심이 없었다"고 덧붙여 흥미로움을 더했다.
7. 조국 민정수석은 박종철 열사의 고교, 대학 선배였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살해당한 박종철 열사는 조 수석의 혜광 고등학교와 서울대 후배였다.
박종철 열사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사이였던 조 수석은 고문치사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나에겐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며 박 열사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곤 했다.
조 수석은 박종철 고문치사 27주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각종 자유와 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