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나현주 기자 =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남친이 데이트통장을 만들자고 하는데 나는 싫다", "썸남이 밥은 사주는데 나한테 꼭 후식을 사게 한다" 등 데이트비용 관련 고민들이 속속 들려온다.
다들 쥐꼬리 같은 아르바이트비로 생활했던 학생 때보다 지갑이 두둑해진 직장인이 되고 나서 오히려 더욱 데이트비용 문제에 예민해진 것 같다.
남자가 전적으로 데이트비용을 부담했던 엄마·아빠세대와 달리 요즘 청춘들 사이에서는 데이트비용 분담이 뜨거운 화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녀가 무언가를 할 경우 단순한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남자가 돈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물론 그게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된장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더치페이', '데이트통장'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데이트비용을 안 내는 여자는 '김치녀'라는 질책을 받기 시작했다.
반대로 데이트비용을 내는 여자는 '개념녀'라고 추켜세워지고 남자는 이를 주변에 자랑하며 '능력남'으로 인정받는 상황이 됐다.
동시에 일부 여자들은 '개념녀'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 기꺼이 데이트비용을 절반 이상 부담하고 혹여 남자가 수입이 없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남자가 여자한테 돈을 안 쓰는 건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서다"라는 인식을 여전히 고수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굽히지 않는 여성들과 '더치페이', '데이트통장'을 원하는 남자들은 지금도 걸핏하면 피 튀기는 토론을 할 만큼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남녀가 '나의 입장도 배려해달라' 서로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친이 더치페이를 하자는데 정말 나를 덜 좋아하는 걸까', '남친도 빠듯한데 더치페이가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상반된 개념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여자들도 많다.
혹자는 이 문제에 대해 '남자가 내는 비용 : 여자가 내는 비용'이 아니라 '남자가 내는 비용 / 남자의 소득'이 답에 가까울 거라고 주장한다.
남자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여자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면 그 진심(?)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얼 줘도 아깝지 않은 건 남녀를 불문하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요즘 청춘들 사이에서 '기회비용'을 따지고 '가성비'를 따지는 계산적인 관계가 점점 뚜렷하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순수해야 할 남녀 사이가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경제적 능력도 향상돼 여자도 어느 정도 데이트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요즘 청춘들의 형제 관계라 하면 외동이나 2자녀가 대부분이라 개인주의 성향이 심해진 점도 한 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랑을 받고만 자란 탓에 남들에게 베풀 줄은 모르는 것이다.
특히 내 한 입 풀칠하기도 힘들 만큼 사회는 날로 각박해져 내 몫을 먼저 떼놓고 남에게 베푸는 태도가 당연시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경제적 여유나 탄탄한 미래가 없으니 마음의 여유마저 없어져 각자의 삶에만 매달리게 된 셈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낭만이나 순수함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 지 오래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이해 가기 때문에 요즘 청춘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울 따름이다.
데이트비용 문제에 대해 감히 이렇다 할 정답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사회가 아무리 각박하게 변할지라도 연인들이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려고 했던 부모 세대의 로맨틱한 '낭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