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인사이트] 서윤주 기자 =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줄까? 성격도 좋고 정말 성실한 사람인데, 어때?"
친구의 소개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간다. 수줍은 인사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미와 낭만이 느껴지는 소개팅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낭만이 존재하던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남녀의 소개팅 모습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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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요즘에는 지인보다는 어플리케이션의 주선을 받아 소개팅을 한다.
어림잡아 100여 개가 넘는 '소개팅 어플'은 하루에 한 명을 소개해주는 형태부터 토너먼트 형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것까지 가지각색이다.
대부분의 소개팅 어플은 가입과 소개의 조건으로 사진, 출신 대학, 직장 등 기본적인 프로필은 물론 지역, 체형, 종교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요구한다.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는 만큼 개인이 원하는 조건에 근접한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어플을 이용하는 사용자들도 "이렇게 좋은 게 왜 이제서야 나온 거야!", "어플로 솔로탈출하자" 등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주된 이유는 지인이 주선한 소개팅이 '잘못될' 경우 생기는 부담감을 덜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까다로운 조건의 사람을 떳떳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외에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만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이용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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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원하는 사람과 맺어준다는 명분으로 '서울대 동문만 가입할 수 있는 소개팅 어플', '적정 기준치 이상의 외모를 가져야 가입할 수 있는 어플' 등이 생겨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를 빌미로 더 적나라한 '계급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괜스레 씁쓸해진다.
고학벌의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어플들은 가입할 때 명문대나 유명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학교나 직장 이메일로 인증 번호를 받아야 한다.
해당 어플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은 "이렇게 인증절차가 있어서 더 믿음이 간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일각에서는 "어플에도 금수저들의 그들만의 세계가 필요하냐?"며 반발하고 있다.
어플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정해놓은 기준의 외모를 가져야 가입할 수 있다는 어플도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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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건과 외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연애가 세상에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조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칠 경우 또 다른 형태의 계급사회를 만드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미숙한 사람은 당신이 필요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요즘 젊은 이들이 들으면 고리타분한 말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사랑에는 최소한의 낭만이 있어야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연애에서까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1순위가 되는 한국 사회가 점점 갑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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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주 기자 yunju@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