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인사이드'
[인사이트] 라영이 기자 = "남자친구를 봐도 이젠 설레지도 않고 오히려 없을 때가 더 편한 것 같기도 해요..."
친한 대학 후배가 솔로를 탈출했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고작 6개월 만에 한다는 소리다.
동생은 지난 1월 잠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손님으로 자주 오던 1살 연상 남자와 사귀고 있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번호를 교환하고 연락을 주고받다가 3일 만에 남자 쪽에서 먼저 고백해 연인으로 발전했다.
당시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가 없으면 잠시도 못 살 것처럼 뜨겁게 사랑해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다.
그 후로 6개월. 아직 사계절도 함께하지 못한 두 사람은 빠르게 만났던 만큼 너무나 빠르게 식었다.
KBS2 '연애의 발견'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갈뿐더러 궁금증이 증폭돼 "왜? 좋아죽을 땐 언제고. 너한테 잘 안 해줘?"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관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젠 매일 만나지 않아도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어쩔 땐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거짓말까지 해가며 만남을 피한 적도 있고 일부러 연락을 무시하기도 한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동생의 말과 행동은 마치 이별 통보를 받길 바라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는 그녀에게 그 남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 사이에서의 이러한 문제는 비단 동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SBS '연애시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하지만 요새는 관계 '유지'보다는 '확장'으로 초점이 옮겨지다 보니 사람 사이에 '깊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 것 또한 쉬워졌다. 스스럼없이 마음을 주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만난 지 단 며칠 만에 평생을 함께한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는 찰나의 순간일 뿐 예전만큼 관계를 무겁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권태기'라는 것을 느끼고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내 앞에서 나름대로의 고민과 한탄을 늘어놓는 동생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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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지금 세상은 가볍게 만나 잠시 외로움을 달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는, 한마디로 '인스턴트'식 인간 관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사람들을 요즘엔 '금사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 조급증'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거나 사랑했던 연인에게 카톡 하나로 이별을 통보하는 것. 이런 것들 또한 '인스턴트'식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것에 금방 싫증을 내버리고 당장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인간'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공허함에 굶주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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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두렵게 하는 점은 동생이 나에게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며 고민을 털어놓기 전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즉 필자 역시 '인스턴트'식 인간관계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생이 고민을 털어놨을 때 잠시 동안 그녀를 철없다고만 느꼈던 내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고마워. 얘기해줘서" 동생에게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그녀는 뭐가 고맙냐고 계속해서 되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동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과연 진정한 '관계'란 무엇일까.
'인스턴트'식 인간 관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바로 지금이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라영이 기자 yeongyi@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