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영화 '아가씨'의 베드신 논란과 박찬욱 감독의 '낚시질'

영화 '아가씨'

 

[인사이트] 서윤주 기자 = 매번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깐느박' 박찬욱 감독이 오랜만에 새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근친상간을 담은 영화 '올드보이'와 성직자의 성욕을 보여준 영화 '박쥐'에 이어 이번에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 '아가씨'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성애를 다뤘다는 사실 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점은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여주인공의 베드신이었다. 


개봉 전부터 '수위 조절 불가능'이라는 선정적인(?) 수식어를 달고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적나라하고 파격적"이라는 입소문이 자자했던 영화 '아가씨'의 베드신은 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토록 난리인 걸까?

 

거기에 대한 해답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뒤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영화 '아가씨' 

 

'아가씨'는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돈 많은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재산을 뺏기 위해 유명한 여도둑의 딸 숙희(김태리)가 사기꾼 백작(하정우)과 함께 음모를 꾸미는 내용이다.

 

하녀로 히데코의 저택으로 들어가 그녀가 백작의 계략에 빠지도록 유인하는 역할을 맡은 숙희는 언제부터인가 어리숙한 아가씨 히데코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동성에 대한 애로틱한 감정은 점차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일어난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음모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네 남녀의 사랑과 전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영화 '아가씨' 

 

여기서 논란이 된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신은 총 세 번 등장한다.

 

첫 번째 베드신에서 두 여주인공은 욕망이 가득 찬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를 탐해 보는 이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주인공들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사와 과장된 몸짓을 남발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영화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베드신은 첫 번째 베드신에 비해 더 과감한 장면들이 추가됐음에도 파격적이라기 보다 하나의 어색한 '곡예'를 보는 것 같아 관객에게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면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두 사람의 화합을 보여주는 마지막 베드신에서는 에로티시즘이나 하다못해 로맨스라도 보여줄 것으로 관객들은 기대한다. 


이런 기대감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감독은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기구'를 개입시켜 두 주인공의 사랑을 하나의 놀이로 표현해 헛웃음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은 "생각보다 야하지 않네?"라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 '아가씨' 

 

솔직히 작품의 노출 수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한(?) 일부 관객들은 영화사와 감독의 '마케팅 전략'에 보기 좋게 낚인 셈이다. 


사실 그렇게 선정적인 장면은 애초에 없었는데도 일부러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수위 조절 불가'라는 파격적인 문구를 사용한 것이다. 


관객들은 실망스럽다고 반응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상업 영화의 경우 초반 입소문을 잘 타야 흥행할 수 있는데 아가씨는 초반부터 "베드신 촬영 현장에는 스태프들이 없었다", "수위가 너무 높다" 등의 말로 이슈몰이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런 '미끼'에 낚인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몰려들었다.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청불 영화 사상 최단기록을 달성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컸다.

 

하지만 너무 초반 '이슈몰이'에만 집중한 탓일까? 현재 아가씨의 흥행 속도는 이전에 비해 주춤거리고 있다.


이는 선정성을 이용해 관객들을 단번 끌려다보니 영화의 진짜 매력을 알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베드신 논란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관객들에게 실망감과 아쉬움을 안긴 '아가씨'는 반짝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영화로 남지 못했다. 


박찬욱 감독과 영화사의 '낚시질'을 보면서 흥행이 먼저인지 영화의 본 의미를 살리는 게 우선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서윤주 기자 yunju@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