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와 가스를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밝히면서 전기료 및 가스비가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4일 열린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전기 판매를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하는 내용 등이 담긴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공공재로 분류돼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해온 전력 판매를 민간에도 허용함으로써 요금 결정권을 민간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가스도입·도매 분야 역시 시장 경쟁구도를 조성한 뒤 2025년부터 민간에게 순차적으로 개방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경쟁체제가 구축돼 에너지 산업의 효율성이 높아져 요금이 인하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수익성을 앞세우는 민간기업의 특성상 결국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전기와 가스는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필수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전력은 그동안 생산원가의 85% 안팎의 수준에서 요금을 받아왔다.
원가 이하로 제공되고 있는 전기와 가스가 민영화돼 기업들이 경영을 이유로 기습적인 가격 인상을 할 경우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국전력과 같은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민간개방을 통해 가격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방만한 경영으로 부실과 부채가 쌓인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개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민영화가 절대적인 해법은 아니다.
이는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경쟁을 통한 가격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민영화를 강행했지만 결국 국민적 불편을 초래해 다시 국유화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전력을 공공독점 형태로 운영해오다 1996년 만장일치로 미국 최초 전기를 민영화하여 민간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에너지 회사들의 담합으로 전기요금이 70배나 껑충 뛰어오르는가 하면 발전소 수리를 이유로 전기공급을 중단시켜 2000년과 2005년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남미 볼리비아는 1999년 수도 민영화를 진행했지만 이듬해 수도세가 무려 300%나 뛰면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항의했고 결국 오랜 진통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진국인 싱가포르의 경우 항공·전력·통신·금융 등 시민의 생활과 직결된 분야를 공기업이 운영하고 있지만 경쟁력은 무척 높다.
실제로 '싱가포르 항공(Singapore Airline)'의 경우 전세계 항공사 경쟁력 조사를 하면 언제나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다.
공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방만한 경영 탓이지 공기업이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처럼 실제 전기와 수도, 가스 등 '필수 공공재'를 민영화한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당초 정부의 의도대로 민영화를 통한 가격 경쟁보다는 공공독점이 민간기업의 독과점으로 이관된 것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연구결과를 보면 판매 경쟁도입으로 효율은 개선됐지만 판매 사업자의 이익만 늘었을 뿐 소비자의 이익은 실제적으로 없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적자'라는 이유로 공공재 성격이 강한 전기와 가스를 민간에 매각하려는 발상은 국가 스스로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정부는 "전력 소매판매 및 가스 도입도매 민간개방과 에너지 공기업 상장은 민영화와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여론이 좋지 않자 한발 물러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전기와 가스 민간개방이 '민영화'가 아닌 '효율화'라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민들이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겠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했던 '국민과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당시 전기와 가스 등을 민영화 하려고 한다는 '의혹'에 대해 근거없는 '흑색 비방'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임기 1년 반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후보 시절 국민과 했던 약속을 뒤집고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민영화와 다를 바 없는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 발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는 결국 민간 에너지기업들에게 독과점적인 이윤만을 남겨줄 뿐 서민 등골 빼먹는 정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