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서윤주 기자 = 마냥 착하고 정의롭기만 한 영웅보다 매력적인 악당이 사랑받는 시대가 왔다.
한때 사람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정의를 수호하던 스크린 속 영웅은 언제부터인가 '뻔하고 지루한' 존재가 되어 뒷전으로 밀려났다.
혜성처럼 등장한 개성만점 악당들이 영웅의 자리를 차지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고 있다.
도대체 악당에겐 어떤 매력이 숨어 있을까.
지난 3일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홍보 문구를 내걸고 개봉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주인공들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자살 특공대'라는 의미의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치명적인 기술과 괴력으로 무장한 흉악 범죄자들을 모아 만든 비밀 특공대의 이야기다.
슈퍼맨이 죽자 정부요원 아만다 월러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범죄자 특공대'를 만든다.
갑자기 한 팀이 된 고담시티 최고의 악당들은 명령을 어기는 즉시 터지는 폭탄 칩을 몸에 박은 채 세상을 구하러 거리로 나선다.
그간 영웅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악당들이 주체성과 개성을 가지고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나선 것이다.
악당이 주인공이 된 데에는 단연 악당들의 매력과 공(?)이 가장 컸다.
기존의 악당들은 세상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 존재의 이유였으나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새로운 악당들은 자신만의 사연과 인간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할리퀸은 원래 젊고 유능한 정신과의사였다.
어캄 어사일럼 정신병원에 부임한 그녀는 고담시티 최악의 악당 조커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심리상담에 나선다.
그러나 만남이 거듭될수록 악당 조커에게 동조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 할리퀸은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됐다.
조커의 매력에 흠뻑 빠진 할리퀸은 결국 그의 탈주를 도우며 악당으로 거듭난다.
할리퀸은 매번 악당 조커에게 매를 맞고 버림받지만 평범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이지만 할리퀸을 보면 '악당'보다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데드샷은 평소 돈만 주면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이자 고담시티의 히어로 배트맨과 앙숙관계다.
그런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하나 밖에 없는 딸이다.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청부살인업을 시작한 데드샷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딸이 실망할까봐 항상 노심초사한다.
밖에서는 최고의 저격수지만 딸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데드샷에게서는 악당의 이미지보다는 '딸바보' 아빠가 떠오른다.
이처럼 새로운 트렌드의 악당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사연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들 외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악당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비록 그들의 본업은 악행이지만, 그 속에서 나타난 인간적인 면모가 관객들로 하여금 한결같이 정의롭고 착하기만 한 영웅들보다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매력적인 악당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바뀐 만큼 앞으로는 더 인간적이고 통통 튀는 악당들이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개성과 사연을 가진 매력적인 악당이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윤주 기자 yunju@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