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치매'걸린 아내 살해한 80대 남편을 법원이 선처해준 이유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치매 걸린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80대 남편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선처를 베풀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5일 인천지법 형사15부(허준서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구속된 남편 A(84)씨에게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 7일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아내 B(85)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리고 발로 가슴을 수차례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슬하에 9남매를 둔 노부부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노부부의 생활을 돌보며 함께 살던 막내아들이 2012년 사망하면서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가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아내를 챙겨야 하는 건 오로지 남편의 몫이었다.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치매 아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소주를 마시며 고단함을 달래고는 했다.


사건은 첫 손주의 결혼식 날 발생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부부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이날 저녁 남편은 아내와 식사를 마친 후 여느 때처럼 소주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아내는 "소주는 무슨 소주냐"며 핀잔을 줬다.


순간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남편은 아내를 때려 살해했다.


그런데 당시 범행 현장에서 남편은 죽은 아내에게 죽을 먹이려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 남편도 심각한 치매 환자였던 것이다.


2015년부터 조금씩 치매 증상을 보여온 남편은 범행 직전 자녀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된 상태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잃었다"며 "하지만 간병인이던 피고인 역시 치매로 건강이 악화돼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가다 극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찼을 나날들을 오롯이 홀로 견뎌왔다"며 이번 범행을 남편이 사리판단이 어려운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범죄인을 교화하고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복귀하게 하는 것 역시 형벌이 가진 기능이라고 설명한 재판부는 "피고인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참회와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도 법이 허용하는 선처와 관용"이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