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으로 심폐소생술(CPR)을 했는데, 술에 취해 힘 조절이 안 됐다"
지난해 2월,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A씨(30대)는 조사 과정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부검 결과는 A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피해자 B씨(20대)는 복부 내 혈관과 장기가 찢어질 정도의 심각한 폭행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A씨와 B씨는 2022년 12월 연인 관계로 발전하며 B씨의 오피스텔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연애 초기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A씨는 사소한 갈등에도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23년 6월, A씨는 B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약 10차례 때려 112 신고로 이어졌으나, B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사건은 종결됐다.
비극은 지난해 2월 11일 새벽, 두 사람이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발생했다. 교제 지속 여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고, B씨가 A씨를 밀치는 순간, A씨는 격분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는 B씨의 머리를 바닥에 여러 차례 내리치며 마구잡이로 폭행했다.
B씨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A씨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가 위중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성폭행을 저질렀고, 이 장면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하기까지 했다.
폭행 후 방치된 B씨는 결국 현장에서 숨졌다. A씨는 B씨가 호흡하지 않자 그의 동생에게 연락했고, 동생이 현장에 도착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A씨는 체포됐다.
살인과 준유사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범행 순서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투며 성폭행이 먼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그가 촬영한 영상에서 피해자가 이미 의식을 잃은 모습이 확인된 점 등을 근거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고, A씨 역시 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2부(허양윤 부장판사)는 지난 7일 A씨에게 1심보다 더 형량이 센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더불어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 신상정보 20년간 등록, 보호관찰 5년 등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했고, 공소사실을 자백했더라도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 점, 의식이 없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등 반인륜적 행위, 유족에 대한 피해 회복 노력이 전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원심의 형량은 가볍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항소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