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4일(월)

목숨 구해줬더니... 광주 '화재' 빌라 주민들 소방서에 "수리비 800만원 내놔"


사진=광주 북부소방서


광주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소방관이 강제로 현관문을 개방했다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현관문 파손에 대한 세대주들의 손해배상 요구가 제기된 것인데, 적법한 공무 집행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방서는 법적 책임이 없음에도 현실적인 부담을 떠안게 됐다.


23일 광주 북부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1월 11일 새벽 2시 52분께 광주시 북구 신안동의 한 4층짜리 빌라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불길을 잡는 동시에 인명 구조에 나섰다.


불이 시작된 세대의 현관문이 열리면서 빌라 내부는 순식간에 짙은 연기로 가득 찼다. 소방대원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2층과 3층 세대 문을 두드려 안에 있던 주민 5명을 신속히 대피시켰다. 옥상으로 피신한 주민 2명도 무사히 구조됐고, 1층에 있던 2명은 스스로 대피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대로 구조 작업을 끝낼 수는 없었다. 소방당국은 새벽 시간대였던 만큼, 자고 있거나 연기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주민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2~4층의 닫혀 있던 6가구의 현관문을 강제로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도어락과 현관문이 파손되면서 수리비로 가구당 약 130만 원, 전체 800여만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대원은 "당시 화재로 연기가 건물 전체로 퍼지면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신속한 수색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불길을 잡고 주민을 모두 구조한 후에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파손된 현관문에 대한 세대주들의 손해배상 요구가 이어진 것이다.



법적으로 소방당국은 이번 사건에서 배상 책임이 없다. 소방관의 현관문 개방은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이는 행정배상 책임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해당 보험은 소방관의 실수로 인한 손해 발생 시 적용되는데, 이번 경우처럼 정당한 공무 수행 중 발생한 손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일반적인 화재 피해 시 주택화재보험이 손실을 보상하지만, 이번 상황은 다르다. 불이 시작된 세대의 세대주가 화재 당시 사망하면서, 다른 가구의 현관문 파손에 대한 책임이 보험사로 넘어가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세대주들이 소방당국에 직접 손해배상을 요구하면서 북부소방서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 = 인사이트


광주시소방본부는 유사 상황을 대비해 1,000만 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확보해 놓기는 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약 800만 원의 배상 비용을 사용하게 되면 향후 예산 집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부소방서는 현재 자체 예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보상 대책을 검토 중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예산 문제를 넘어, 공무 수행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의 경계를 두고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소방관들이 적법한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앞으로 긴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시민들도 분노 섞인 반응을 내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손해배상 신청한 사람들에게 '앞으로 '119·112 도움 안 받겠다' 각서를 받으라"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소방관들의 사명감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적법한 공무 수행과 개인 재산 보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