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던 벽이 무너졌다. 세상에 둘도 없는 요새로 여겨졌던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를 완전히 뚫는 데는 7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5일 새벽,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나와 있는 "일출 전에도 유효하다"라는 점을 활용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수사팀은 기습적으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다.
1차 체포영장 집행 때와는 달리 대통령 경호처 소속 경호관들은 스크럼을 짜거나 몸싸움을 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불상사 역시 전혀 없었다. 무기나 총기를 든 경호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혈 사태가 일어나면 엄중 책임을 묻겠다"라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경고가 무색해졌다.
경호처 직원들 대부분이 대기동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성훈 경호차장의 "영장 집행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듣는 경호관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초강경파' 김 차장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호처 내부 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김 차장은 이날 새벽에도 관저를 돌면서 경호관들에게 잘 대응하자는 식으로 다독였다.
적극적으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 대통령을 지키자는 뜻을 하달했던 것이다.
지난 13일에는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경호처 핵심 직위자가 윤갑근 변호사(尹 대통령 변호인)의 요청을 받고 경호처 직원 약 70명을 불러모았고, 윤 변호사는 "경호관들이 경찰을 체포할 수 있으니 위축되지 말라"는 뜻을 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의 뜻이 담겼을 것으로 보이는 이 말을 들었던 경호관은 이날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윤 대통령과 김 차장 등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벌어졌다. 1차·2차 저지선을 뚫고 3차 저지선까지 뚫은 공수처·경찰 수사팀은 이내 대통령 관저 '현관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했다.
윤 대통령과 김 차장 등은 관저 현관문이 열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 진입'을 당연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같은 경호처 '와해'는 상대적으로 온건파였던 것으로 드러난 박종준 전 경호처장의 사퇴·경찰 출석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1차 때 무력 사용 불가 방침을 정하고 비폭력 대응을 주문했던 박 전 처장의 사퇴 뒤 '유혈 사태' 가능성이 커지자 내부 동요가 심해졌고,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호처의 저지선이 쉽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한편 공수처는 이날 오전 10시 33분 체포영장을 집행하면서 윤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체포'했다.
체포된 윤 대통령은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는 것일 뿐, 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며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체계를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불법적이고 무효인 절차에 응하는 것은 이것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불미스러운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체포한 윤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