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의 상징인 '학전'을 30여 년간 운영하며 수많은 후배 예술인을 배출한 가수 겸 공연연출가 김민기가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지난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의 조카인 학전 김성민 씨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부고 기자회견을 갖고 고인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김민기는 지난 19일부터 점차 병세가 악화했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은 뒤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지난 21일 오후 8시 26분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김민기는 1951년 3월 31일 전북 익산에서 출생해 서울대 서울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뒤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활동했다.
이후 1970년 명동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그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을 작곡했다.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군중들이 부르기도 했다.
직접 쓴 시적인 가사는 당시 번안곡 위주이던 우리나라 포크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광석, 윤도현, 설경구, 황정민 등 수 많은 예술인 배출
김민기의 가수 생활은 외압에 맞선 저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이슬' 이후 발표한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등은 줄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연극에도 활발히 참여했던 고인은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 뒤 공연을 연출했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이곳에서 1천 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열었던 故 김광석이 있다.
김광석 외에도 권진원, 나윤선, 이소라, 유리상자, 윤도현, 정재일 등 다수의 실력파 가수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특히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역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독일 원작을 한국에 맞게 번안해 8천 회 이상 공연하며 7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배우 황정민과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는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김민기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대학로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의형제(2000)', '개똥이(2006)' 등을 연출했다. 또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 어린이 연극에도 열정을 쏟아부었다.
고인은 '의형제'로 200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분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지하철 1호선'으로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정부로부터 괴테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3월 김민기의 위암 투병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경영난으로 공연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학전은 개관 33년 만인 지난 3월 15일 문을 닫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연출한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가 됐다. 폐관에 앞서 50여 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심과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 3호실에 마련되며, 조문은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