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바람났는데 화가 안 나"
평소와 거의 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아내에게 그런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고, 언제가부터 무의식적으로 아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빨래를 하는데 처음 보는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요란한 문양의 양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스타킹에 구멍이 나서 빌려 신었어"
누가 봐도 변명 같은 그날의 발언 이후 아내의 애정 행위, 특히 스킨십이 과해졌다. 저녁 밥상엔 반찬 가짓수가 늘었다. 급기야 주말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쇼핑을 가기도 했다. 결혼 3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남편은 실소가 나왔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불륜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한 아내의 행동이) 애달팠다? 그랬던 거 같다"고 했다.
아내가 눈치 보는 게 부담스러웠던 남편은 일부러 퇴근 시간을 느꼈다. 아내는 계속 전화에서 어디냐고 물었다. 결혼 3년째.
남자는 구속 아닌 구속같이 느껴져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야근하고 늦은 시간 퇴근하는데 그날따라 아파트 주차장은 이중주차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할 수 없이 인근 상가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건물 모퉁이에 아내와 낯익은 얼굴의 남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다투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내가 가려고 하니까 남자가 잡아당기며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키스까지 했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그는 "신기할 정도로 화나거나 슬프지 않았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보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있던 사람은 전 직장 상사였다. 그 사람의 돌잔치 때 얼굴을 봤던 기억이 있다. 아내는 그에게 '정말 배울 점 많은 선배'라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이어 찾아온 주말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일요일엔 함께 영화도 봤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남자는 잠든 아내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을 바꿨다. 주차장에서 찍었던 아내와 상간남의 불륜 장면 사진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새벽 3시에 집을 나와 주차장에서 이혼 절차를 검색했다. 아내는 오전 8시가 조금 넘으면 일어난다.
남자는 "이제 곧 깰 거고, 연락이 오겠지? 사과 같은 건 필요 없으니 그냥 물 흐르듯 이혼하고 싶다. 더 이상 어떤 형태로든 엮이는 게 싫다. 솔직히 말하면 아내는 사람 모양을 한 무언가처럼 느껴져 소름 돋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팀장까지는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 계속 미뤘는데 다행이다 싶다. 이것만은 아내에게 고맙다. 진심이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전화 온다ㅎ"였다.
해당 글은 지난 1일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와이프 바람났는데 화가 안 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한 남성의 사연이다.
누리꾼들은 "이혼하고 광명 찾자", "정작 큰일이 닥치면 갑자기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때가 있다", "힘내 형" 등이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 "괜찮아"라고 묻자 남성은 "전화해서 울고불고하는 거 다 들어주다가 무의식적으로 '연기 좀 그만해 역해서 못 듣겠어'라고 하니까 '뭐?'라더니 말없이 쭉 있다가 끊었다. 출근해야지"라며 뒷이야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