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수)

추월했다는 이유로 신혼부부에게 엽총 쏴 살해한 사형수 정형구 "사형제 폐지해달라"

체포 당시 정형구 모습 / MBC 뉴스


23년째 옥살이 중인 사형수 정형구. 사형 선고가 내려질 당시 "생명을 연장 시켜 달라. 아이들이 어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후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해온 김성기 목사와 면회하면서 사형제 폐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21년 정씨는 사형제 위헌소원 사건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 '국가가 자신의 생명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형구는 지난 1999년 1월 19일 자신의 차를 추월한 신혼부부를 향해 엽총을 난사해 숨지게 한 살인범이다.


정형구가 사용한 엽총 / KBS 뉴스


이날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상마읍리 문의재 언덕길에는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미루다 7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는 A씨(28)와 아내 B씨(27)의 차량이 지나고 있었다.


이 차량은 신혼여행을 기념해 큰 맘 먹고 빌린 고급 그랜저 차량이었다. 


이들 부부의 차 옆에는 강도·강간 전과 6범 정형구가 탄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그는 사업 실패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엽총을 싣고 꿩 사냥을 나오는 길이었다. 운전대는 절도 전과 5범 한준희가 잡았다.


그러던 중 A씨와 B씨가 탄 그랜저가 정형구의 차량을 추월했고 흙먼지가 날리자 정형구는 분노했다. 


체포 당시 정형구 모습 / MBC 뉴스


고급차를 탄 이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두 차량은 5분 정도 추월 경쟁을 벌였고 정씨와 한씨는 격분해 총을 집어 들고 내렸다. 세 번의 총성이 울린 뒤 뒷통수에 총을 맞은 A씨는 의식을 잃었다. 


B씨는 정씨를 향해 "제발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턱과 복부에 총을 맞고 끝내 숨졌다. 이후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몸 20여 군데에서 탄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범인들은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현장을 지나던 유일한 목격자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검문소가 차려졌지만 경찰은 정씨와 한씨를 찾지 못했다.


정형구가 신혼부부를 살해한 현장 모습/ MBC 뉴스


정형구는 수원에서 회사를 세우고 뻔뻔하게 생계를 이어갔다. 6개월 뒤 경찰에 '삼척 신혼부부 살인사건 범인이 수원과 안산에 숨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긴 탐문수사 끝에 두 사람이 체포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형구는 "A씨 승용차가 길도 안 좋은 곳에서 추월해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며 범행 당시 정신적으로 힘든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재판부는 정형구에게 사형을, 한준희에게는 살인 방조와 살인미수 방조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사건 이후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서도 정형구에게 피해자들의 두 딸에게 2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지만 정형구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가진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형구는 올해 9월 사형 시설을 갖추고 있는 서울 구치소로 이감됐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제도를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정형구는 23년째 미집행 사형수로 있다. 


최근 그는 교도소에서 종교활동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2022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는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인생인 줄로만 알았는데 예수를 알게 되고 내게도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범적인 삶을 살아내겠다"고 말했다.


다만 사형제 위헌 결정이 내려져도 재심 대상이 아닌 정형구는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