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임기수 기자 = 아시안게임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6일 양궁 경기장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나타났다.
이날은 우리나라 남녀 양궁 대표팀이 13년 만에 단체전 동반 금메달을 딴 날이었다.
정의선 회장의 양궁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로 39년 째 현대차그룹은 양궁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이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래 4번의 회장을 역임했고 아들 정의선 회장이 물려받아 양궁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협회 후원 중 가장 오랜 기간이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서 훈련 현황을 세심하게 챙기고 항저우 현지에서도 선수들이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운영상황도 직접 챙겼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때만 주목받는 종목이지만 정몽구, 정의선 부자(父子)는 대를 이어 묵묵하게 한국 양궁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후원사인 현대차그룹은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양궁협회와 함께 경기장에서 3km 떨어진 호텔에 선수들의 전용 휴게 공간을 마련했다.
하루에 여러 경기가 치러지는 양궁 종목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물리치료, 전용사워공간은 물론 다양한 간식과 음료도 아낌없이 제공했다. 특히 현지 유명 한식당과 계약을 맺어 선수들이 선호하는 식사를 하도록 지원했다.
대회에 앞서서는 개최지 맞춤형 훈련, 첨단 기술 기반 훈련 장비 개발, 대회 기간 선수단 컨디션 관리 등의 전폭적인 후원을 펼쳤다. 특히 선수들이 실전 감각을 지속할 수 있도록 8월 말 정몽구배 양궁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R&D 기술을 활용한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 자동기록 장치',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비'를 개발해 선수들의 체계적인 훈련도 도왔다.
3D 프린터로 선수의 손에 최적화한 '맞춤형 그립'을 제작해 대회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그룹의 양궁 후원은 정몽구 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됐다.
1984년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 사장이었던 정 회장은 LA 올림픽 여자 양궁선수들의 금빛 선전을 지켜본 뒤 양궁 육성을 결심했다.
이듬해인 198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해 현대정공과 현대제철에 각각 여자 양궁단과 남자 양궁단을 창단했다.
특히 장비를 이용하는 경기인 만큼 장비 품질을 직접 점검하고 개발해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도록 했다. 전세계 양궁인들이 한국산 장비를 가장 선호하게 된 것도 이런 계기에서 비롯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아 대회를 앞두고 미국 출장 중이던 정 회장은 심장박동수 측정기와 시력테스트기 등을 직접 구입해 보내기도 했고 1991년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선수들이 물 때문에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위스에서 물을 공수하기도 했다.
부친의 뜻을 받들어 정의선 회장도 지난 2005년부터 19년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다. 2021년 열린 양궁협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재선출될 만큼 지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2008년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해 양궁협회가 중장기적 양궁 발전 플랜을 세우도록 했다.
일선 초등학교 양궁장비와 중학교 장비 일부를 무상 지원하고 2013년에는 초등부에 해당하는 유소년 대표 선수단을 신설해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소년대표(초)-청소년대표(U16)-후보선수(U19)-대표상비군(U21)-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대회인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를 개최하고 생활체육대회 및 동호인 대회 창설, 메달리스트와 함께 찾아가는 양궁교실을 여는 등 양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6년 리우 올림픽 등 중요한 경기 때마다 현장을 직접 찾아 선수단을 챙겼다.
코로나 속에 열린 도쿄올림픽 때도 미국 출장을 마치자마자 도쿄로 날아가 경기를 참관하고 함께 응원했다.
한국양궁은 지난 1978년 방콕 아시아 대회부터 이번 항저우 대회까지 금메달 40개, 은메달 22개, 동메달 17개를 획득하며 한국 양궁이 아시아 최강은 물론 세계 최강임을 재확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