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7일(일)

북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울·수도권 비행금지 구역' 요구...적극 검토까지 했다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북한이 2019년 9·19 남북 군사 합의 협상에서 청와대, 국방부, 주한미군 기지 등 서울과 수도권이 포함해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할 것으로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조선일보는 북한이 9·19 남북 군사 합의 협상 때 군사분계선(MDL) 이남 60km까지 전투기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또 매체는 북한의 요구가 기본적인 대북 정찰 비행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수도 방위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리한 요구였지만 청와대와 국방부, 통일부는 군에 전달해 검토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북한의 이러한 제안은 지난 2018년 6월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제8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에서 나왔다. 


9·19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뉴스1


북한은 MDL 기준으로 고정익(전투기)은 군사분계선 60km, 무인기는 40km, 회전익(헬기)은 20km 이내 상공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군사분계선 60km 이하 지역은 경기 북부와 인천, 서울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부와 주요 기간이 밀집한 서울 한복판에 전투기와 정찰기도 띄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단급 UAV(무인항공기)는 운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파주 등에 있는 헬기 기지의 이전도 불가피해 수도권 방위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리한 요구였다. 


북한이 1차 협상 자리에서 요구한 비행 금지 구역 / 네이버 지도


당시 회담은 그해 9월 평양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 군사 분야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1차 협상 자리였다. 


한국 대표단은 김도균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관을 비롯해 박승기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 통일부·합참 과장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매체에 따르면 당시 대표단은 북측의 제시에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전직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 대표단은 주로 북한 대표단의 설명만 들을 뿐 비행 금지 구역과 관련해 우리 쪽 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해당 제안을 검토한 합참은 발칵 뒤집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MDL 기준으로 평양까지의 거리는 140km이지만 서울은 40여 km에 불과했다. MDL 기준으로 똑같이 60km 이내 상공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정하는 건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실제론 한국에 크게 불리한 조건이었다. 


이에 합참 실무자가 반대 의견을 청와대와 협상 대표단에 보고를 올렸고, 한국 대표단은 한 달 뒤인 7월 중순 북측에 고정익 20km,  무인기·회전익 10km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이런 식으로 협상 못 한다"며 '고정익 40km, 무인기 25km, 회전익 15km' 안을 다시 제시했고 합참은 다시 "수도권 방어 임무에 치명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8월 진행된 3차 협상에서 협상 대표단은 고정익 서부·동부 각각 20km·40km, 무인기 서부·동부 각각 10km·15km, 회전익은 10km 이내로 합의했다. 


합참은 평양과 서울은 MDL 기준으로 거리가 3배 이상 차이 나서 비행 금지 구역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한국만 불리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최종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군 내부에서는 최종안과 관련해 "손발을 묶고 수도 방어를 하자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는 그해 9월 19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할 수 있는 9·19 군사 합의가 도출됐다"고 발표하며 군에 합의안을 따르라고 지시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 / 뉴스1


9·19 군사 합의가 5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폐지와 관련한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9·19 군사 합의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드시 폐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 후보자는 북한 전선 지역 감시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등의 이유로 꾸준히 합의 폐기를 주장해 왔다.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도 9·19 군사 합의에 대해 "남북 간의 합의는 상호 존중돼야 하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지키고 북한은 지키지 않는 합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 / 뉴스1


국방부가 펴낸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지난해 말까지 북한이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17건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김 부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이 다시 군사분계선을 침범하는 도발 등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서 효력 정지 판단 요건에 입각,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후 필요하다고 판단 시 (9·19 군사합의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