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과외 앱에서 만난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의 살해 동기와 관련해 영화 '화차'가 재조명되고 있다.
정유정의 살인 사건이 영화 '화차'의 실사판이라는 것.
'화차'는 지난 2012년 개봉한 영화로 타인의 인생을 빼앗은 인물 차경선(김민희 역)의 삶을 그린 영화다.
차경선은 지옥 같은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고가 없던 여성을 죽이고 그녀의 신분으로 살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화차'란 불교 용어로 나쁜 짓을 한 악인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불타는 수레를 말한다.
지난 1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는 살인범 정유정을 조명하며 정유정이 피해자의 신분을 노리고 범행했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그알' 측은 정유정의 살인이 계획범죄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정유정은 범행 3개월 전부터 '시신 없는 살인'에 대해 집중 검색했다. 범행 사흘 전에는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중고로 산 교복을 입어 중학생으로 위장했다.
과외 앱을 통해 과외 선생님을 구할 때도 '혼자 사느냐', '선생님 집에서 과외가 가능하느냐'는 질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수법을 보면 정유정은 피해자의 목덜미를 집중적으로 가격했는데 방송에 출연한 법의학자는 "치명타인 걸 알고 살해하기 위해 찌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스무 곳 넘게 찔렸다는 것과 찔러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아는 형태로 보아 명백한 살인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학창 시절도 조명됐다. 학창 시절 정유정은 커튼 뒤에 숨어서 지내고, 친구들과 대화를 꺼리는 등 교류에 미숙한 모습을 보였으나 고3이던 2017년 골프장 캐디에 지원해 면접을 봤던 그의 모습은 집요했다.
당시 면접관은 정유정을 떠올리며 면접 때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더니 탈락한 이후 2~3차례 다시 이력서를 보내고 회사 게시판에까지 탈락 이유를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유정이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골프장 캐디에 지원하며 집착 수준의 행동을 드러낸 것은 부모의 이혼 후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 거란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정유정이 '신분 탈취'를 노리고 범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유정은 범행 후 초기 진술에서 "피해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누군가가 범행 중이었다. 그 범인이 제게 피해자 신분으로 살게 해 줄 테니 시신을 숨겨달라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심리 전문가는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런데 거짓 진술 속에도 정유정의 욕구를 살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신 유기 대가로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정유정에게 피해자 신분이 곧 보상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대학, 전공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이 있어서 이러한 진술이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경찰 조사에서 영화 '화차'를 반복 감상했다고 언급한 것에도 주목했다.
정유정이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입고 집을 나온 것 역시 신분 세탁 욕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정유정이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2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해선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 전문가는 "일면식 없는 사람을 찾아가 죽이는 행동에 합리적 설명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유정을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지어야 안심한다. 사이코패스기 때문에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순환 논리에 갇히게 된다"며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정신과 전문의는 정유정에게 자폐적 성향이 보인다며 고기능성 자폐, 아스퍼거의 특성을 가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스퍼거는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홀로 지내는 것을 선호하며 한 가지 관심 분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이다.
다만 이런 정황과 추측만으로 범행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난 5년 동안 정유정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구체적인 예방책을 마련하고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표창원은 "정유정은 섣불리 규정하기 어려운 전재이다. 그가 왜 이런 괴물이 됐는지는 그 과정 중에 우리 사회가 발견하거나 막을 수 있는 여지는 없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유정을 섣불리 단순하게 규정지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