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인간의 얼굴과 유두 등 모낭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나와 짝짓기를 하는 모낭충.
이런 모낭충들이 이제는 기생충에서 인간 체내 공생생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1일(현지 시간) 영국 레닝 대학 무척추생물학 부교수 알레얀드라 페로티(Alejandra Perotti) 박사 연구팀은 생물학 저널 '분자생물학 및 진화(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에 모낭충 게놈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먼저 '모낭충'이라 알려진 얼굴 기생충은 '데모덱스 폴리쿨로룸(Demodex folliculorum)'이다.
D. 폴리쿨로룸은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약 0.3mm의 미세 진드기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옮게 된다.
성인이 되어 모공이 커질수록 수록 D. 폴리쿨로룸의 개체수는 절정에 이른다.
D. 폴리쿨로룸은 주로 얼굴과 유두 등의 모낭에 서식하며 모공 세포에서 나오는 피지를 먹고 산다.
연구팀에 따르면 D. 폴리쿨로룸은 모낭 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외부 위협이나 경쟁에 노출되지 않는다. 다른 유전자를 가진 종을 만날 일도 없다.
이렇다보니 D. 폴리쿨로룸은 점점 필요없는 유전자와 세포를 떼내고 극도로 단순화된 생물이 됐다.
이런 유전자 축소와 배열 변화는 D. 폴리쿨로룸의 독특한 특징을 만들어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가장 소름돋아하는 '짝짓기'다. D. 폴리쿨로룸은 유전자상 자외선 방어력이 부족하고 낮에 깨어있게 해주는 유전자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또 무척추 생물의 밤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멜라토닌을 직접 생성하지는 못하지만 해질녘에 인간 피부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을 이용해 밤새 짝짓기를 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짝짓기 방법 역시 유전자 배열 때문에 독특하다. 수컷의 생식기는 앞에 달려 있어 위로 돌출돼 암컷 밑에 깔려 있는 형태다.
연구팀은 D. 폴리쿨로룸이 짝짓기를 하지 못하면 멸종에 당면할 수도 있다는 결과도 찾아냈다. 이런 현상은 이전에 세포 내 박테리아에서 목격된 적은 있지만 동물에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D. 폴리쿨로룸은 또한 항문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의 한 연구에서는 D. 폴리쿨로룸은 항문이 없어 2주동안 몸속에 배설물을 축적했다가 죽으면서 한꺼번에 배출하기 때문에 피부 염증이 생긴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기에 그동안 부당한(?) 비난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에서 모낭충이 성체가 될수록 세포가 줄어드는 것이 포착됐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은 피부 기생충에서 체내 공생생물로 바뀌어가는 첫 걸음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논문 공동저자인 뱅거대학의 헨크 브레이그 박사는 "모낭충이 여러가지 면에서 비난을 받아왔다"면서 "인간과의 오랜 관계는 이들이 얼굴의 모공이 막히지 않게 유지하는 것과 같은 단순하지만 유익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