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채호기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줄무늬 비닐 커튼'이 민음의 시 290번으로 출간되었다.
채호기 시인에게 '수련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안겨 준 역작 '수련' 이후 19년 만에 선보이는 연작시집이다.
'수련'을 분기점으로 시인은 '언어'를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에 동원되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물질성을 가진 질료이자 신체를 가진 개체로서 발견해, 그 물질성을 통해 언어와 실재의 간극을 좁히는 실험을 이어 왔다.
또한 시인은 삶을 부여하는 물질 '신체'와 정신을 구성하는 물질 '언어'의 접점이 되는 장소로서 '자아'에 주목해 왔는데, 특히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아의 끝없는 해체와 경계의 허묾으로 오직 언어의 신체로 감각할 수 있는 세계를 그려 내며 오랜 시력을 다해 천착한 이 실험의 정점이자 시적 상상력의 극한을 펼쳐 보이고 있다.
총 29편의 연작시로 구성된 이번 시집 '줄무늬 비닐 커튼'은 의식이 자아의 경계를 잃은 후 소리뿐인 '말'이 되어 태어난 순간에서 그 대장정을 시작한다.
'말'은 물속에 떨어진 돌처럼 신체 내부로 깊이 침잠해 들어간다. 몸속은 이름 없는 충동들이 부딪쳐 발생하는 반동의 힘과 무수한 자아가 서로를 발견하며 만들어 내는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이 충동들, 언어와 의미가 부딪쳐 빚어내는 찰나의 빛과 힘을 받아쓴다.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이 빛은 언어의 극한에 가닿고자 거듭 한계를 넘어온 시인에 의해 비로소 완전한 삶과 죽음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며 거대하고도 독립적인 하나의 신체이자 세계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