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원혜진 기자 = 코로나19 영향에도 불구하고 결국 올림픽 성화에 불이 붙었다.
지난 23일 저녁 2020 도쿄올림픽은 신주쿠 국립경기장에 마련된 성화대 점화에 성공하며 1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개막식은 터널을 지나 태양처럼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아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역대 올림픽 개막식도 재조명되고 있는데, 88올림픽 개막식에서 레전드로 남은 굴렁쇠 소년이 다시금 회자되며 감동을 주고 있다.
1988년 9월 17일 오후 1시 10분. 잠실 주경기장에서는 서울 88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그 순간 화려한 공연이 끝난 후 갑자기 긴 정적이 찾아왔다. 이후 먼 곳에서 "삐이"하는 이명 소리가 들리더니 굴렁쇠 소년이 경기장 끝에서 등장했다.
작은 점처럼 보이던 그는 특별한 음악이나 안무, 사람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는 한가운데서 해맑게 손을 흔들고 다시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갔다. 1분 동안 펼쳐진 소년의 퍼포먼스는 화려한 개막식 사이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해당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 시대를 끝내고 모두 참가한 평화의 올림픽이었는데, 7살 소년의 굴렁쇠 퍼포먼스는 '평화'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례 없는 획기적인 기획이었던 만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당시 88올림픽 개·폐막식 총괄기획을 맡은 이어령은 이를 강하게 밀어붙여 성공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이어령은 굴렁쇠 소년으로 한국의 전쟁고아 이미지를 깨부수고자 했으며, 굴렁쇠의 원 모양으로 동양의 이미지, 지구, 미래의 한국을 돌린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실제로 아무런 장치적 효과 없이 '정적'을 고수했던 이유도 전쟁 및 냉전으로 시끄러운 어른의 세상과 대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는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주었고, 88올림픽의 상징이자 대표 이미지가 됐다.
88올림픽 이후 굴렁쇠 소년은 수많은 올림픽 연출자에게 꾸준히 언급되며 영감을 주기도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회식에서 스타디움 바닥이 에게 해(海)를 상징하는 호수로 변하며 한 소년이 홀로 대형 종이배를 타고 물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나왔는데 이는 연출자가 굴렁쇠 소년에게서 특별한 감명을 받아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프랑스의 유명 평론가인 피에르 레스타니는 굴렁쇠 소년을 일컬어 행위예술 그 자체였다며 극찬한 바 있다.
전쟁과 냉전으로 오랫동안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았던 전 세계에 굴렁쇠 소년이 지나간 자리는 평화의 일행시(一行詩)로 각인되며 현재까지도 깊은 울림과 여운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