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9일(화)

인민군 '1번 군가' 작곡해 중국서 '건국영웅' 대접받는 광주 출신 독립운동가

정율성 음악 축제 홈페이지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최근 반중정서가 나날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독립운동가 '정율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기념하는지 모르겠는 인물'이라며 정율성이 소개됐다. 


정율성은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난 항일 운동가로 1933년 중국 난징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중국에 머물면서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했는데 이때 의열단장 김원봉이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율성(律成)'이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정율성 구글 검색


논란이 된 건 이후의 행적이다. 그는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고, 오늘날 중국 인민군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해방 이후에는 북한에서 황해도 도당위원장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며 음악전문학교에서 인재를 양성했다. 


이후 북한과 중국을 오가다가 북한에서 김일성에 의한 숙청이 이뤄지자 중국으로 이주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 


중국은 중국에서의 그의 업적을 인정해 중국공산당 100대 건국공신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하는 한편 중국의 3대 혁명 음악가로 추앙하고 있다. 


정율성 동요 대회 포스터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로 정율성을 기념하는 사업이 활발히 펼쳐지는 중이다. 광주광역시에는 '정율성로'가 있으며 정율성 생가가 보존돼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정율성 음악 축제'와 '정율성 동요 경연대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시진핑 주석은 한국을 방문해 정율성을 언급하며 한·중의 우호와 협력을 강조했다.


당시 정율성의 딸인 정샤오티는 한국에 방문해 "고국에서 오랫동안 아버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건 어쩔 수 없지만 한·중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그런 부분도 바뀔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원이었던 정율성을 대한민국에서 기념할 필요가 있냐고 지적한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기념하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활약했으며 6·25전쟁 때는 중국 인민지원군 일원으로 전선 위문활동을 했던 인물이기에 기념하면 안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정율성을 독립운동가로서 기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가 사회주의 활동을 한 것은 맞으나 독립운동에 관한 평가는 1945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 


해방 이전 사회주의는 독립운동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으며 오늘날 이념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