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8일(월)

70년 전 오늘(15일) '흥남 철수 작전' 성공으로 우리 국민 10만명이 목숨을 구했다

전쟁기념관


[인사이트] 성동권 기자 = 포탄의 화마가 대한민국을 휩쓴 1950년 6·25전쟁.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국군과 미군은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데 이어 압록강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황은 역전됐다.


결국 추위와 병력에 이기지 못한 연합군은 12월 8일 '흥남 철수' 지시를 내렸다.


일주일이 흐른 12월 15일, 미국 1해병사단을 필두로 약 10만 명에 이르는 연합군이 흥남에 집결했다.


전쟁기념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하지만 그곳에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철수 작전이 진행되던 흥남에는 살기 위해 이들을 따라온 10만 명의 피난민들이 있었던 것이다.


철수 작전은 군 장병들 위주로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피난민들을 버릴 수 없던 김백일 당시 1군단장 등은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긴 설득 끝에 "대규모의 시민을 군함에 태워 탈출할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던 미군 관계자들도 피난민과 함께 철수하는 것을 승낙했다.


특히 군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투입됐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는 25만t에 달하는 화물을 버리고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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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흥남 철수 작전에서는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국 제10군단의 장병 10만명을 비롯해 차량 1만 7천대, 피난민 약 10만명, 35만t의 군수품이 안전하게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당시 전쟁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실제 흥남 철수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현대전에서 가장 성공한 양대 철수작전으로 불린다.


현재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는 10만 명의 인명을 구한 영웅 6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