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지금껏 수많은 영화와 책들이 나치 독일 치하에서 벌어진 광기와 폭력의 역사를 복기하고자 시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엘리 위젤이나 프리모 레비 같은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주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게도 생존자가 아닌, 가해자의 행적을 좇는다.
저자 퍼트리샤 포즈너는 우연히 아우슈비츠에 주임 약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그에 대한 정보를 수년에 걸쳐 수집하며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이 책은 그 결과물로, 평범한 제약 회사 직원이었던 빅토르 카페시우스가 아우슈비츠의 주임 약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철저한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추적했다.
유명 제약 회사 바이엘에서 일하던 '사람 좋은' 영업 사원 카페시우스가 어떻게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었는지, 자연스레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떠오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우슈비츠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카페시우스라는 가해자의 삶을 중심축으로, 거대 화학 회사 이게파르벤과 나치 독일이 어떻게 아우슈비츠를 만들어 냈는지 밝혀낸다.
이게파르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손을 잡고 아우슈비츠를 탄생시켰다.
죽음의 수용소는 단순히 히틀러로 대표되는 광기 어린 한 사람과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복합기업 이게파르벤과 나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된 수용소가 생겨났고, 그 아래에서 카페시우스 같은 개인이 부단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 모든 것이 맞물려 악이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 과정을 그려 냈다.
그런가 하면 책의 후반부는 종전 이후의 독일에서 '악'을 스스럼없이 자행한 이들을 법정에 세워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