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유진선 기자 =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씨의 월북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자진 월북"이라는 발표를 내놓은 정부 측과 "월북이 아니다"라는 A씨 유가족·동료들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 측이 제시한 A씨의 월북 정황 근거를 반박하는 주장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어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아래에는 정부가 내놓은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을 모아봤다.
해경 "슬리퍼 벗어둔 채 사라진 것이 월북의 증거"
해경은 피격 공무원 A씨의 월북 근거로 갑판에서 발견된 '슬리퍼 한 짝'을 제시했다.
하지만 A씨 실종 직전 함께 당직 근무를 한 동료 공무원은 "A씨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배에 비슷한 슬리퍼가 많아 해당 슬리퍼가 A씨 꺼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유족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A씨 친형은 "해경에 전달받은 고인의 물품 리스트에서 안전화가 빠져 있었다"며 "(동생이) 슬리퍼가 아닌 안전화를 신은 채 사라졌다는 명백한 증거이자 월북이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해경청장 "휴대전화 일부러 끈 게 월북의 정황 증거 될 수 있다"
해당 발언은 지난 8일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이 A씨가 월북한 정황 증거를 설명하던 도중 나왔다.
이 자리에서 김 청장은 "배터리가 없어 휴대전화가 꺼진 경우와 일부러 전원 버튼을 눌러 휴대전화가 꺼진 경우는 차이가 있다"면서 "수사 결과 인위적인 힘으로 휴대전화 전원 버튼이 눌렸고, 이것이 월북의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김 청장은 몇 시간 후 "통신사에 확인해 보니 휴대전화 전원을 인위적으로 끌 경우와 배터리가 없어 꺼진 경우는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며 앞서 했던 발언 내용을 정정했다.
북한 통지문에 적힌 표현은 "월북자" 아닌 "침입자"
당초 군 당국과 정부는 "A씨가 월북하던 도중 북한군에 발견돼 사살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가 나온 뒤 북한 측이 보낸 통지문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달 북한 통일전선부 명의로 전달된 통지문에는 A씨가 "정체불명 대상", "불법 침입자"로 표현돼 있을 뿐, A씨가 북한군 측에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소속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북은 불법침입, 남은 자진월북. 완전히 상충하는 주장이지만 남북 모두 정치적 필요에 의한 변명의 논리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군과 청와대의 방치 속에 국민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상황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모면하려고 월북 정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월북 가능성 없다"는 동료들 진술 보름 동안 공개하지 않은 해경
숨진 A씨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해경 조사에서 일관되게 "월북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해경은 이러한 진술 내용을 보름 동안이나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동료들의 진술 내용은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무궁화 10호 선원 13명의 진술조서 요약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인의 동료들은 "당시 밀물로 조류가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북쪽으로 헤엄쳐 갈 수가 없다", "월북 가능성은 없다" 등의 진술을 했다.
국민의힘은 "해경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A씨를 월북자로 몰아갔다"라며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실패한 인체 모형 표류실험을 '월북 근거'라고 제시한 해경
앞서 해경은 모의실험 결과 등을 토대로 A씨가 자진 월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경이 근거로 내놨던 모의실험 자체가 '엉터리'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해경에 받은 'A씨 신고 더미(인체 모형) 표류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해경은 당초 네 차례의 실험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실험부터 인체 모형이 분실됐고, 이에 나머지 3건의 실험은 취소됐다.
안 의원은 "해경이 실패한 실험을 A씨의 월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짜 맞추기 수사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