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박수은 기자 = 영화를 보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장면을 종종 발견한다. 바로 '오마주'다.
'오마주(Hommage)'는 존경과 존중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말 그대로 예술과 문학에서는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원작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에서 영화감독들은 좋아하는 혹은 존경하는 선배 영화인의 업적을 기리며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영화만 오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훨씬 오래전 제작된 명작 그림을 영상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관객들에게 익숙한 혹은 낯선 그림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지금부터 미술계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세기의 명작을 오마주한 영화 속 장면 7가지를 소개한다. 혹 다음의 영화를 보다가 해당 장면을 포착한다면 오마주한 작품과 영화의 맥락에 맞춰 해석해보거나 아는 척하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1. 영화 '덩케르크' (2018作) -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作)
19세기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주도한 풍경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이 천연한 남성의 뒤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의 포스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의 전격적인 기동으로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출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철수 작전인 '덩케르크(Dunkirk) 작전'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채 운명의 시간만 기다리는 연합군이 독일군이 진격을 멈춘 사이에 연합군이 탈출에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며 전쟁의 참혹성뿐만 아니라 전쟁 상황 속 인간의 감정선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전쟁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삶과 죽음 선택 혹은 수용안을 두고 고뇌하는 인물의 감정을 프리드리히의 작품 속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방랑자'의 모습과 비슷하게 연출했다.
한국전쟁 70주년은 맞이한 2020년, 해당 그림과 장면을 통해 역사 속에서 전쟁이 인류에게서 앗아가는 것과 또 인류에게 교훈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2. 영화 '셔터 아일랜드' (2010作) - 키스 (1907~1908作)
우리에게도 익숙한 명작 중 하나이자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인 '키스'. 이 작품을 오마주한 영화는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경의를 표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작품이자 그의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만남, 그리고 세계적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셔터 아일랜드'.
"괴물로 평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라는 주옥 같은 명대사를 남긴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탈출이 불가능한 섬 안의 정신 병원에서 펼쳐지는 스릴러물 영화다.
극 중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가 분한 테디가 아내를 끌어안았을 때 재로 변하며 부서지는 장면은 클림트의 '키스'를 오마주했다. 영화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의 원작 스토리에 거장의 연출력이 더해진 작품 속 격정적인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두 남녀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무아의 지경을 표현한 명작 '키스'를 연출하며 전쟁과 폭력 앞에 무력해진 한 남자의 슬픔과 분노, 공포 그리고 압박감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했다.
3. 영화 '트루먼 쇼' (1998作) - 달빛 아래의 건축
1998년 개봉된 미국의 SF 코미디 영화 '트루먼 쇼'. 코미디 전문 배우가 연기하고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가 무색할 만큼 결코 가벼운 웃음과 해학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인생을 전 세계에 쉬지 않고 방영하는 TV쇼, 그리고 주인공이 그 사실을 조금씩 인지해가고 자기 삶의 진실을 발견하려고 파고드는 이야기이다.
영화 전개는 다소 코믹적으로 풀어가지만 주인공의 심리 변화, 그리고 '만들어진 세상'에 저항하는 과정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극 중 짐 캐리가 분한 트루먼이 살았던 그의 삶은 거대한 돔 안에 구축된 거대한 세트장, 인위적인 삶이었다.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진짜 삶을 찾기 위해 비바람이 치는 파도 속 항해 끝에 찾게 된 출구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벨기에의 화가 르네 프랑수아 길랭 마그리트 그림 '달빛 아래의 건축'을 빌려와 표현했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배우는 '데페이즈망', 일명 '낯설게 하기' 기법의 대가인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세상이 가장 낯선 곳임을 깨닫는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듯 현실을 뛰어넘는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묘사했다.
4.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作) - The Blue Boy (1770作)
18세기 영국의 당대 최고의 풍경화가 이자 초상화가인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작품 'The Blue Boy(파란 옷을 입은 소년)'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엄숙함보다는 가벼움, 특히 블랙 유머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대사들로 독특하지만, 완성도 높은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복수'이다.
그 중 '흑인 노예 서부극'이라는 타이틀로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흑인 노예, 그리고 시련 속에서 은인의 도움으로 성장해 복수에 성공한다는 무협 영화 요소를 잘 녹여낸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아내를 구해야 하는 분노의 로맨티스트 '장고'를 얇고 부드러운 질감의 파란 비단옷을 입은 백인 소년의 모습을 모티프로 연출했다.
게인즈버러의 그림 속 석양이 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어린 소년과 '장고'를 동일시함으로써 연령과 인종, 그 무엇도 한 명의 인간을 구속할 수 없으며 그 모습이 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인지 보여준다.
5. 영화 '인셉션' (2010作) - 오르내리기 (1960作)
무언가 끝이 보이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 혹은 상황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 그림은 네덜란드 예술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석판 인쇄물 '오르내리기(Ascending and Descending)'이다.
지붕이 뚫린 큰 건물 아래 놓인 끝 없는 계단을 나타낸 이 그림은 끝은 물론 그 시작점조차 어디인지 불분명하다. 이 그림은 '자각몽(루시드 드림)'에 영감을 받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한 영화 '인셉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리가 기억하는 건 항상 꿈의 시작이 아니라 꿈의 중간부터잖아"라는 대사는 '오르내리기' 그림에서 시작과 끝은 없지만 모든 구간이 중간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해석이 분분한 해당 영화의 결말처럼 감독은 영상으로 재현한 그림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며 또 그 해석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6.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作)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네덜란드 대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북유럽의 모나리자',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릴 만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림이다.
하지만 그림 속 젊은 여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물론 작가 페르메이르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숱한 '설'들이 존재하는 명작을 영화계에서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림을 모티프가 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각색한 영화가 제작됐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 왼쪽 어깨를 틀어 고개를 돌린 채 큰 눈동자와 살짝 벌린 관능적인 입술,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표정은 보는 사람에게 신비감을 주며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림 속 여인이 살아난 듯한 '스칼렛 요한슨'. 특히 영화 엔딩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스칼렛 요한슨이 그림 속 소녀로 서서히 전환되며 디졸브 되는 장면은 압권이다.
7. 영화 '멜랑콜리아' (2011作) - 오필리아 (1851~1852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물 위에 떠 있는 신부.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영화 '멜랑콜리아'의 포스터 역시 명화를 떠올리게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아'. 그림 속 오필리아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픈 소식을 듣고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을 보면 죽어가는 사람,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온하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죽음'보다도 자신을 슬프게 한 소식, '사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림 속 오필리아에게도, 또 영화 속 커스틴 던스트이 연기한 저스틴에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상황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자신이 처한 슬픔에 잠식됐을 뿐이다.
영화 '멜랑콜리아'를 연출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주인공을 오필리아로 표현하며 21세기 현대인들이 갖가지 이유로 '우울의 늪'에 빠져가면서도 진짜로 봐야 하는 것을 놓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