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일)

혼인신고 한 달, '일 나갔다 온다'던 남편은 한줌 재로 돌아왔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피해 가족 시설에서 한 피해 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 뉴스1


[인사이트] 민준기 기자 = "결혼하기 위해 혼인신고까지 마쳤는데…" 


20대 A씨는 혼인 신고 1달 만에 남편을 잃었다. 혼인 신고와 별개로 A씨와 사망한 남편 사이에는 5살 아들도 있었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내는 애타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주저앉아 눈물 범벅이 됐다.


A씨는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며 "(시신 상태가 참담해도) 단 1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병원으로 가려 한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지난 29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숨졌고 4명이 실종됐다. 중상자 8명을 포함 총 10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피해 가족을 위로하는 엄태준 이천시장 / 뉴스1


갑작스러운 대규모 화재 사고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남편을 잃은 A씨 뒤에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가 망연자실한 듯 앉아있었다. 


A씨의 시어머니는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우리 아들 지방에서 올라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어", "빨리 우리 아들 찾아내"라 외쳤고 이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실신했다.


A씨는 "어머님이 홀몸으로 남편을 키웠다"며 "상당히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화재 사망자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단기간에 돈을 벌기 위해 나온 우리 주위에서 함께 숨 쉬던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사고 당시 현장의 모습 / 뉴스1


이날 오전 엄태준 이천시장은 브리핑을 통해 피해 가족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시신 수습과 예우를 갖춘 장례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보상 절차도 분명히 하겠다"는 말도 당부했다.


엄 시장의 말이 끝나자 유족들은 "돈 버는 게 문제냐"며 "관 속에 돈을 넣어서 갈 것이냐"고 울부짖었다.


화재 사고로 조카를 잃은 B씨는 "2008년에 아주 비슷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똑같은 사고가 반복됐다"며 "정치인들이 법 만들고 공무원들이 월급만 받아 챙기고 아무것도 안 해서 이런 일이 난 게 아니냐"고 질책했다.


전소된 사고 현장의 모습 / 뉴스1


30일 소방당국과 이천시에 따르면 오전 11시 기준 38명의 사망자 중 29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폭발로 인해 사망자의 신원이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상태가 많아 지문과 DNA를 채취·대조해 이중으로 신원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어 속도가 더딘 상태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총 190명의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불이 난 B동에 근무하던 인원은 전기, 설비, 도장 등을 담당하던 9개 업체 78명이다.


경찰은 현재 공사업체 관계자 15명에 대해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