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박상우 기자 = "더는 이렇게 맞고는 못 살겠다. 안 돌아갈래..."
대한민국을 수호하던 병사 A씨는 휴가 복귀를 앞두고 부대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부대 내에서 습관처럼 이뤄지는 폭력에 차마 복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100일 휴가(신병 위로 휴가)를 마지막으로 부대에 돌아오지 않았다.
15년간 군의 검거망에 잡히지 않은 채 살아가던 그는 삼십대 중반 무렵 스스로 부대로 돌아왔다.
그는 왜 제 발로 자수를 한 걸까. 그 이유는 모두 '가족'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군(軍)에서 배포하는 사건 사례집에 따르면 A씨는 첫 휴가를 나가기 하루 전 19XX년 X월 X일 선임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날부터 폭력에 시달리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웠지만 '휴가 나가서 즐기고 오면 다 풀릴 거야'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휴가에 나간 A씨는 생각했다.
"아 그냥 돌아가지 말자. 복귀하면 나는 너무 우울해질 거야. 밖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자"
그렇게 부대 복귀를 하지 않은 채 A씨의 삶은 흘러갔다. 가명을 사용해 신분을 숨기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하루를 버티는 신세가 됐다.
일부 업장에서는 신분이 위조된 것을 알아채고 폭력과 임금 미납을 일삼았다. 억울하고 화났지만 신고할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가족과도 15년간 인연을 끊은 채 힘든 나날을 살아갔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가 되는 때, 그는 자수를 결심했다.
"제 애가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애비 없는 자식으로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혼인신고도 하지 못해 아내는 미혼모가 됐는데,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후 그는 6개월간 추가 복무를 해 상병으로 조기 전역을 했다. 이후 전군을 돌며 교육을 진행했다.
탈영은 절대 안 된다고. 평생 동안 지울 수 없는 상처에 가슴이 쓰라릴 수밖에 없고, 가족들의 행복도 날아간다고 병사들을 타일렀다.
그의 교육을 받은 시기의 탈영률은 격감했다고 전해진다.
젊은 시절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탈영을 한 이후, 신분이 없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너무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