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역시 봉테일"···영화 '기생충' 속 '선을 넘는' 봉준호 감독의 소름 돋는 연출력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인사이트] 성동권 기자 = 기생충은 지난 10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감독상, 국제 영화상, 작품상을 휩쓸며 4관왕에 올랐다.


역사상 유례없던 한국 영화의 쾌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한번 집중됐다.


이미 1,000만 명이 본 영화지만 재관람 열풍이 불며 극장 재개봉도 이루어졌다.


재관람이 이어지면서 처음엔 몰랐던 기생충의 연출과 장치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기생충'


"선을 넘지 않는 사람들이 좋다"


박 사장(이선균)은 선을 넘는 게 싫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의 이런 발언은 자신의 영역이 침범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박 사장 가족과 기택(송강호 분) 가족, 문광(이정은 분) 가족의 괴리는 영화 속 박 사장이 언급한 '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쉽게 선을 넘고 또 누군가는 그 선을 지키려 한다. 


영화 '기생충'


영화 속 등장인물 문광(이정은 분)은 박 사장 집에서 오랫동안 터줏대감처럼 일해온 가정부로 연교(조여정 분)의 큰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박 사장과 연교가 집을 비울 때면 방공호에 숨겨둔 남편과 함께 거실에서 차를 마시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문광의 특징은 선을 통해서 나타난다. 유리와 유리가 만나는 기점 우측으로 잠에 든 연교를 깨우려 다가간 문광은 연교가 일어나지 않자 결국 선을 넘어 버린다.  


영화 '기생충'


기우(최우식 분)는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나자 그의 집 마당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긴다. 


햇살 좋은 날 유리창 너머로 비친 기우의 모습 가운데로 유리창 이음새가 지나고 있다. 그 선을 넘어 존재하는 건 기우의 오른쪽 다리다. 


양분된 화면 속에서 기우의 본래 위치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선을 일부만 넘었거나 완전히 넘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 '기생충'


기택(송강호 분)과 박 사장의 첫 만남이 담긴 장면 또한 문광이 연교의 잠을 깨울 때처럼 유리 벽 선이 사이를 두고 있다.


기택은 선을 넘을 듯 말 듯 선 가까이에 앉아 있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박 사장은 '한 집안의 가장', '한 회사의 총수'라는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고독한 한 남자'라는 기택의 말에는 눈썹을 꿈틀거린다. 


박 사장은 운전기사와 자신이 객관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고 기택은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선'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계층 간의 갈등과 부조리를, 만족하는 삶의 중요성을, 아니면 또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는데, 봉테일로 불릴 만큼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도 섬세하게 신경 쓰는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하나의 행복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4관왕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섬세함과 관객들의 호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한편 아카데미 수상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영화 '기생충'은 북미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