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9일(화)

유능하지만 몰래 뇌물 받아먹은 공무원을 '세종대왕님'이 혼쭐낸 방법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인사이트] 전형주 기자 = 새로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인기를 끌면서 세종의 업적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유능한 경제사범을 관리한 그의 유연한 태도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세종은 극형을 받아야 할 경제사범을 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종과 문강(文剛) 조말생의 관계를 주목한 글이 다수 올라왔다.


대다수가 세종의 남다른 오너십과 혜안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세종은 비위가 적발된 조말생을 오히려 더 중용하더니, 평생 쉬지 못하고 일만 하게 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01년(태종 1년) 장원에 급제한 조말생은 도승지,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차례로 거쳤다. 영민함과 사교성을 두루 갖춰 출세 가도를 달렸다.


태종 역시 조말생을 끔찍이 사랑했다. 태종은 아들인 세종이 신빈 신씨와 낳은 정정 옹주를 조말생의 장남인 조선과 혼인을 맺게 해 서로 사돈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탄탄대로였던 조말생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1428년 노비를 받는 대신 나라의 이권을 팔아넘겨 폭리를 챙긴 혐의를 받아 수감됐다.


법정 한도의 10배가 넘는 뇌물을 수수해 극형을 받을 위기였다. 그러나 세종은 조말생을 사형하라는 상소가 빗발치는데도, 끝내 극형을 내리지 않았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선대왕인 태종이 조말생을 아꼈다는 핑계를 대더니, 귀양을 보내는 경미한 처벌을 내리고 말았다. 이마에 낙인을 찍으라거나 한양에 올 수 없게 하라는 취지의 상소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급기야 2년 만인 1430년 세종은 조말생을 사면하고 직첩까지 돌려줬다. 반발이 잇따르자 "권도로 행하겠다(내 마음이다)"는 막무가내식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복귀한 조말생은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겨 63세의 노인이 돼 있었다. 그는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게 도와준 세종의 배려가 망극하고 황송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종은 1433년 조말생을 북방에 파견해 여진족을 소탕하게 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조말생이 임무를 다하고 복귀하자 곧바로 지중추원사, 예문관 대제학 등을 겸임하게 했고, 3도 도순문사라는 직급도 하사해 충청도나 전라도, 경상도 일대의 축성 작업을 총괄하라 지시했다.


그는 1447년 4월 향년 78세에 별세하는 날까지 사직을 총 11번 청했지만, 세종은 단 한 번도 윤허하지 않았다. 명예라도 회복하게 도와달라는 부탁 역시 세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경제사범도 능력과 수완은 높이 사 중용했지만, 그 부패함은 묵과하지 않았던 세종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장영실과 세종의 관계를 그린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개봉한 지 2주가 채 안 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극 중에서는 한석규가 세종을, 최민식이 장영실을 각각 연기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