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평화에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종전과 비핵화를 논의하던 1년 전 오늘(18일)이 무색해진다.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은 이 날은 한반도 평화의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니지만, 최근 대남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의 행태를 보면 23년 전의 오늘도 우리에겐 잊어서 안 되는 역사다.
1996년 9월 18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3년 전 오늘은 북한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 강릉시 동해안 일대를 침투해 많은 사상자를 낳은 날이다.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 침투해 정찰 공작을 벌이던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은 복귀를 시도하던 중 꽁치잡이 그물에 걸려 좌초돼 육지로 나왔다.
이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서 육군 제68보병사단 초병과 택시기사가 발견해 신고했다.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했다는 소식과 함께 강원도 일대에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진돗개 하나는 가장 높은 단계의 경계 조치로 최고 경비태세가 내려진 지역에서는 전투 및 수색이 진행된다.
즉 육군 병력이 출동해 무장 침투한 공비들을 소탕하는 작전이 펼쳐진 것이다.
9월 18일 오후 4시 40분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2명이 정찰국 해상처 소속 안내조원 이광수를 체포하고 오후 5시 68사단 수색대대가 잠수함 좌초를 이유로 처형당한 11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19일부터는 본격적인 소탕 작전이 시작됐다. 이날 10시 특전사 3여단 병력이 칠성산 일대에서 공비 3명을 전원 사살했고 이어 오후 2시 공비 3명을 추가로 사살됐다.
오후 4시 오이골 일대에서도 교전 중 적 1명이 죽었으나 아군 전사자 1명도 발생했다.
19일 하루 수 차례의 교전으로 공비 7명이 사살되고 국군 장병 1명이 전사했다.
작전은 그해 11월 5일까지 계속됐다. 이날 마지막 무장공비 정찰조원 2명을 사살함으로써 적군 13명이 사살되고 1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 그렇게 대간첩작전은 49일 만에 종료됐다.
하지만 아군의 피해도 컸다.
교전 중 적군의 피격과 아군의 오인 사격 등으로 오영안 준장을 비롯한 육군 장병 12명이 전사했다. 또한 2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민간인 피해도 잇따랐다. 송이버섯이 제철이었던 당시 출입금지 지시를 어기고 산으로 향했던 민간이 4명이 아군의 오인 사격과 북한 공비의 피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북한 측은 인민무력부 담화를 통해 "훈련 중 기관 고장을 일으켜 표류하다가 좌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전까지는 늘 간첩 사건 자체를 부정한 것과는 다르게 사건 자체는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10월 2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 비서장 접촉에서 북한 측은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북한 군부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사과하지 않을 경우 모든 대북경협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고, 북한 측은 '핵 동결 약속'을 파기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미국이 중재에 나섰고,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유감' 표명을 했다.
결국 남한 정부는 무장공비들의 유골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해 사건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위 사건은 한반도 분단 이후 있었던 '대남도발' 중 가장 악랄했던 것으로 남았다.
'대북경협'과 '경수로 지원'도 이뤄져 있던 당시에 일어났던 일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또한 북한의 '화전양면술'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후 1년, 그 1년 동안 남북관계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전개됐다.
최근 북미 실무 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지만, 계속된 북한의 도발을 상기한다면 안심할 수는 없다.
오늘 23년 전 일과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장병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