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참사전국네트워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및 삭발식 개최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비참하게 죽어간 우리 아들을 비롯한 1403명의 원한을 풀어주세요"
지난 7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가습기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확대 호소 기자회견 및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전신질환 안정 및 판전 기준 완화 ▲피해 단계 구분 철폐 ▲월 1회 피해자 정례보고회 개최 ▲가습기 살균제 정무 태스크포스(TF) 등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 대책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가습기넷은 "환경산업기술원에 피해자라고 신청한 6,389명 중 현재까지 1,403명이 목숨을 잃었다"라며 "그럼에도 실질적인 피해자 보상 등 제대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한 지 2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가 수천 명이다. 정부의 지원 대책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17년 청와대에서 피해자들 만나 '재발방지 및 대책마련' 약속했던 문 대통령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청와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역대 최악의 환경 재난 참사로 꼽히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같은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우리 국민이 더이상 안전 때문에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1403번째 사망자의 아버지, "아들이 아직도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있다"
지난달 25일 목숨을 잃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故 조덕진 씨의 아버지 조오섭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병원만 왔다갔다 하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아들이 아직 차가운 영안실에 혼자 드러누워 있다"고 입을 열었다.
조씨는 "국민 수천 명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죽어가거나 아파하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도 손을 놓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탓에 병원비는커녕 장례비도 지원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박수진 씨, 이재성 씨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삭발식도 이어졌다. 박씨는 옥시 제품을 사용한 이후 면역질환을 앓게 됐으며, 두 아들 역시 같은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씨 또한 옥시 제품을 사용한 뒤 면역질환 등 전신질환이 발병했고 그의 아들도 폐질환과 천식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박씨는 "태어날 때부터 아팠다면 나만 죄책감을 갖고 살 텐데 자연발생이 아닌 인위적인 질환을 갖게 돼 국가에 대한 믿음도 상실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총 6,389명…정부 인정받은 이는 800여 명에 불과해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6,389명 중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800여 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와 피해 가능성 여부 등에 따라 피해자를 총 5단계로 나누고 3단계(가능성 낮음), 4단계(가능성 없음), 5단계(판정불가)에 해당하는 이들은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특별구제계정'을 만들어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기업으로부터 병원비 등 일부 자금을 받아 지원하고 있다.
故 조덕진 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숨진 1,403명의 피해자 중 대다수는 정부로부터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 및 가족들이 '삭발식'까지 거행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기업 간부들 잇따라 재판 넘겨지는 중
한편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련된 기업 간부들이 잇따라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지난 3일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SK케미칼(가습기 메이트 제조사)의 홍지호 전 대표와 한모 전 본부장을 구속 기소했으며, 박철 SK케미칼 부사장 또한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가습기 메이트를 판매한 애경산업에도 칼을 겨누고 있다. 다만 검찰이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3월 말과 지난 1일, 두 번 연속 기각됐다.
이와 관련해 가습기넷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은 뒤늦게 살인기업 관계자들을 형사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처벌은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배상액 상한 없는 징벌적 배상제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기업의 탐욕을 견제할 재발 방지 대책 없이는 이 같은 참사를 절대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