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블루보틀' 오픈하는 날 5시간 줄 서서 커피 마시고 쓴 진짜 리얼 후기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 첫인상은 중요하다고 했던가. 드디어 베일을 벗은 블루보틀은 많은 고객에게 '아무 설명 없이 땡볕에 기다리게 만든 곳'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한 듯하다.


3일 오픈 전부터 '커피계 애플'이라 불리며 입소문을 탄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이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상륙했다. 오픈 첫날인 만큼 블루보틀이 들어선 뚝섬역 인근은 블루보틀 커피 한 잔을 맛보겠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기자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께. 이날 블루보틀의 오픈 시간은 오전 8시였지만, 얼핏 봐도 대기고객이 500명은 넘을 것으로 보였다. 지난 2016년 한국에 들어온 SPC의 '쉑쉑버거' 오픈 당일과 견줄 정도로 그 열기는 뜨거웠다.


블루보틀 매장 초입께 서있던 한 커플은 "7시 40분에 와서 줄을 섰다. 그때도 이미 매장 끝이 있는 대로변까지 크게 4줄 정도 있었다"고 한탄했다. 이들은 매장 오픈을 하기 전부터 대기를 하고 있었지만 오전 9시 20분께가 되도록 커피는커녕 커피 향조차 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매장 초입이 아닌 대로변 쪽 줄은 더욱 심각했다. 매장 초입으로 가는 첫 번째 줄에 서있었던 이들마저도 얼굴빛이 썩 밝지 못했다. 따가운 햇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탓이다. 사실 이날은 기상청이 '초여름 날씨'라고 예고한 만큼 햇살이 따가웠다.


친동생과 함께 왔다고 밝힌 A(28)씨는 "8시 30분에 왔는데 그때부터 사람이 개미떼처럼 많았다"며 "이미 그때부터 사람이 몰릴 게 예상됐는데 그늘막 하나 없이 기다리게 하는 건 좀…"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생 B(24)씨는 "줄에 서있으면서 들었는데 오전 12시부터 기다린 사람이 있다고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됐다. 입소문만 무성한 커피 한 잔을 맛보기 위해 사람이 몰린 탓인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줄이 길어졌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줄에서 줄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제법 길었다. 대로변에만 커다랗게 4개의 줄이 있었는데, 매장 초입으로 가는 첫 번째 줄까지 가는데만 총 130분이 소요됐다. 그 시간 동안 태양은 더욱 달궈졌으며 뜨거운 열기 탓에 입고 왔던 얇은 겉옷 또는 책이나 가방으로 얼굴을 감싸는 고객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진기한 장면도 연출됐다. 블루보틀 커피 한 잔을 마셔보기 위해 무한정으로 기다리다 더위를 참지 못해 인근 카페나 편의점, 배스킨라빈스 등에서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풍경도 포착됐다. 쉽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참 기다리다가 자리는 떠나는 이도 있었다.


놀라운 점은 매장 초입 첫 번째 줄까지 와도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블루보틀 간판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지점까지 오더라도 매장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 이미 그 앞에도 꼬물이 같은 줄이 장사진이다. 거기서는 커피를 눈 앞에 두고 무한정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된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이는 포스기 앞에서 주문을 해도 마찬가지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5분에서 10분 안팎이 걸린다.


기자는 오후 2시 30분이 돼서야 커피 한 잔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블루보틀 표 커피가 손에 들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300여분. 최저임금 시급을 쳐주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했더라면 4만 3,250원을 손에 쥘 수 있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막대한 시간과 체력과 돈을 투자해 얻은 커피의 맛은 어떨까. 놀랍게도 여타 커피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와 큰 차이가 없었다. 투썸플레이스를 비롯해 다수의 브랜드에서도 다양성을 추구한 탓에 요즘은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산미'가 느껴지는 맛의 커피였다. 한국인의 입맛에 특히 잘 맞는다는 카페라떼는 특히 더더욱.


가격적인 면도 아쉬웠다. 블루보틀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와 대표 메뉴인 카페라떼의 가격은 각각 5천원, 6,100원이다. 핸드드립인 싱글오리진의 경우 6,300원이며 아이스는 없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5,800원짜리 뉴오리진이나 콜드브루를 구매해야 한다. 사이즈도 톨사이즈로 보이는 사이즈 하나뿐이다. 소비자 선택의 폭이 여타 브랜드 커피전문점에 비해 좁은 편이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커피계 '마이크로소프트'로 불리며 블루보틀이 넘어야 할 산으로 불리는 스타벅스의 가격과도 제법 차이가 있다. 현재 스타벅스에서는 톨 사이즈 기준으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각각 4,100원, 4,600원에 판매한다. 블루보틀이 900원, 1,500원 비싼 셈이다.


항상 비교 대상으로 불리는 스타벅스와 다른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서비스다. 블루보틀 로고가 그려진 배지를 단 이들은 고객들이 땡볕에서 무한정 기다리고 있음에도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등의 여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늘진 곳에서 고객들을 바라보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그늘막의 부재도 아쉽다. 블루보틀 측에 따르면 금일 오후 2시 기준으로 580명이 매장에 발을 디뎠다. 쉽게 줄이 줄어들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블루보틀을 찾은 이는 더 될 것이다.


이처럼 블루보틀 오픈 당일은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이미 예상됐다. 쉽게 말해 고객들이 밖에서 무한 대기를 할 것이란 상황이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인 셈이다.


브라이언 미한 블루보틀 CEO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그러나 블루보틀 측은 고객을 위한 그 어떤 장치도 하지 않았다. 그저 블루보틀 로고가 그려진 매장 초입 간판 아래에 도착했을때 서야 로고가 그려진 작은 종이컵에 담긴 물 한잔을 받을 수 있었다. 몇 시간씩 더위와 싸우며 기다리는 고객은 '뭘 특별히 주지 않더라도 기꺼이 돈 써줄 호갱'으로 본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대목이다.


실제 기자 뒤에서 기다리던 한 여성은 동행한 친구에게 "두피가 익은 거 같아. 야, 물도 뜨거워졌어. 뜨거운 물 산 줄" 등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몹시 힘겨워했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이런 볼멘소리는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송파구에서 왔다고 밝힌 20대 남성 박모(29)씨는 "기다리는 고객이 하나같이 옷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게 참 신기하다"며 "소비자를 호갱으로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커피를 맛 보기 위해 돈과 시간, 체력을 투자한 고객에게 지루함과 더위를 선물한 블루보틀. 한 잔의 커피를 먹기 위해 다른 브랜드의 아이스커피를 들고 기다리는 고객의 모습을 연출한 블루보틀의 뒷맛이 참 씁쓸하다.


스타벅스를 비롯해 여타 커피전문점과 별다른 차이가 크지 않은 맛의 블루보틀이 과연 한국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고객을 땡볕에서 예상시간 고지 없이 세워둔 블루보틀이 항상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친절함으로 무장한 스타벅스의 아성을 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