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약품 유통하다가 경찰서에 피소된 종근당 창업주
[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약품 외파원으로 일하던 한 청년이 가짜 활명수를 유통하다가 경찰서에 피소됐다.
이 청년은 다행히 얼마 후 고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후 무사히 풀려났다. 얼마 후 그는 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자신이 직접 약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결심한다.
이 사연 속 청년은 바로 종근당의 창업주 고(故) 이종근 회장이다.
故 이종근 회장은 지난 1941년 종근당을 창업한 뒤 처음으로 '약'을 만들었다. 처음 그가 만든 약은 바셀린에 다이아진 분말을 혼합해 튜브에 넣은 '다이아졸' 연고다.
제1호 종근당 약품 '다이아졸' 연고다수 국내 제약사 종합제약업으로 눈 돌려
이로 인해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 완제품을 만들어 팔던 다수 국내 제약사들은 이때부터 종합제약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기쁨도 잠시 지난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종근당은 2000만원 상당의 매출채권을 모두 날렸다.
하지만 故 이종근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더 좋은 약을 개발하기 위해 애썼다. 그로부터 약 10년만에 종근당은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종근당은 지난 1968년 종근당은 항생제 클로람페니콜 수출을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승인을 받고 역사적인 '퀀텀 점프'를 했다.
종근당, 일본 수출실적 전체 의약품 수출액 56.5% 집계
이듬해부터는 일본 수출을 시작한 후 62만 4,546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이는 당시 종근당의 전체 의약품 수출액의 56.5% 해당하는 수치였기에 그 의미가 더 컸다.
이때부터 故 이종근 회장은 '원료를 생산하지 않으면 제약사가 아니다'는 신념으로 자체 약을 개발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종근당은 지난 1972년 5월 국내 제약사 최초로 자체 연구소를 신설하고, 지난 1974년에는 국내 최대 항생물질 발효공장을 완공했다.
수입 원료의약품 중 최대 물량인 리파마이신 국산화 성공한 종근당
지난 1976년에는 종근당이 수입 원료의약품 중 최대 물량이었던 항결핵제 리파마이신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어 지난 1984년에는 스웨덴 아스트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페니실린계 살균성 항생물질 염산바캄피실린을 합성했다.
이후 이 약은 바캄실린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돼 국내를 비롯해 해외에도 수출됐다. 지난 1985년에는 FDA에 리팜피신 품질 승인을 받고 미주 수출을 개시했다.
수입 의존하던 의약품 원료 국산화 이룬 故 이종근 종근당 회장
이후에도 종근당은 꾸준히 FDA공인을 획득하며 국내 제약사의 자존심을 지켰다.
국내 최대 규모 원료합성∙발효공장을 설립해 100% 수입에 의존하던 의약품 원료의 국산화를 이뤄낸 故 이종근 회장.
직접 약을 만들겠다는 집념 하나로 회사를 운영해나간 창업주가 있기에 종근당이 오늘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