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서 분리…설탕과 밀가루 만들어 팔던 CJ그룹자산 규모 3조원에 불과한 CJ 28조로 일군 이재현 회장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설탕과 밀가루를 만들어 팔던 공장을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끄는 '엔터제국'으로 탈바꿈 시킨 인물이 있다.
그는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화제작사 드림웍스로부터 3억달러(당시 한화 약 3천억원) 투자를 이끌어내며 설탕공장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손이자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아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CJ그룹은 26년 전인 지난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당시만 하더라도 그룹 자산 규모가 3조원 밖에 되지 않은 기업이었다.
사업은 설탕과 밀가루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이 부임한 뒤에는 180도 바뀌었다. 지난해 기준 CJ그룹은 자산 28조원이 넘는 재계 순위 15위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우열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고 덕분에 과거 설탕공장이었던 CJ그룹은 국내 최대의 문화콘텐츠 기업을 넘어 생활문화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재현 회장의 최종 목표는 11년 뒤인 2030년 3개 이상의 사업에서 세계 1등하는 '월드베스트 CJ'를 완성하는 것이다.
설탕공장이었던 CJ그룹을 '엔터제국'으로 키운 이재현 회장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1년 6개월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남산 시대의 문을 연 CJ그룹 이재현 회장에 대한 흥미로운 팩트를 정리해봤다.
1. 삼성 이재용 부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사촌형이다
이재현 회장은 1960년 3월 19일 서울에서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친할아버지가 삼성그룹 창업주다.
故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작은 아버지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사촌지간 사이다.
원래 서로 인간적인 친분과 신뢰가 깊었던 사이였지만 부모 세대의 소송전으로 사실상 남만도 못한 사이로 지냈다가 지난해 앙금을 풀었다.
이재현 회장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도 사촌지간 사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어머니 이명희 회장이 고모다.
재미난 사실은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정용진 부회장은 사촌지간이기도 하지만 경복고등학교 선후배이기도 하다.
2.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삼성이 아닌 씨티은행에 입사했다
이재현 회장은 학창시절 자신이 삼성그룹 자재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조용하고 겸손했다.
고려대학교 법학을 전공한 이재현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할아버지 후광을 입어 삼성에 입사한 것이 아닌 씨티은행에 입사해 평범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장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것도 30: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씨티은행에 들어갔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그룹을 물려받는데 욕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재현 회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할아버지의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이라는 끈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할아버지가 삼성그룹 창업주 아닌가. 다행히도 故 이병철 선대회장은 손자가 하는 일을 그냥 두고만 봤다.
3. 이재현 회장은 할아버지를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고 불렸다
이재현 회장은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 故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외모는 물론 사고와 행동방식까지 할아버지를 닮아 주변에서 '리틀 이병철'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故 이병철 선대회장도 이재현 회장을 끔찍이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이 삼성이 아닌 씨티은행에 입사했을 때 그냥 지켜봤다.
삼성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손자가 내린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구부러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故 이병철 선대회장도 어쩔 수 없는 할아버지였다. 손자를 끔찍히도 아끼고 사랑했던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이재현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이재현 회장은 삼성에 입사했다.
4. 자신이 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말이 '러브콜'이지 사실은 '명령'이었다.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이재현 회장은 결국 입사 2년만에 씨티은행을 그만두고 제일제당에 입사한다.
할아버지 회사에 입사한 이재현 회장은 '이병철 손자'라는 딱지보다는 '이재현'으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었다.
제일제당 신입사원 연수에서 동기들에게 자신이 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을 정도로 이재현 회장은 자신을 낮췄다.
1983년 제일제당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재현 회장은 1993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발령받을 때까지 7년이란 시간을 제일제당 경리부와 기획관리부에서 경영을 배웠다.
이재현 회장이 CJ제일제당 '비비고'를 앞세워 '한식 세계화'를 꿈꾸는 것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5. 이재현 회장은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첫 임원직책을 시작했다
이재현 회장도 짧지만 삼성전자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CJ그룹 회장의 자리에 오르기 전 할아버지인 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뜻에 따라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이다.
첫 임원직책이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였다. 하지만 그해 CJ그룹이 삼성으로부터 계열 분리하고 독립 경영을 선언하면서 이재현 회장도 몇 개월 뒤 제일제당 상무로 복귀했다.
제일제당으로 복귀한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 부사장과 부회장을 거쳐 우열곡절 끝에 2002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룹 회장에 오른 이재현 회장은 회사 이름을 CJ로 바꾸고 설탕과 밀가루 중심이었던 그룹 사업을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유통 등으로 확대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엔터 제국' CJ그룹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6. 대학시절 미팅에서 만난 아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 '사랑꾼'이다
이재현 회장 부부는 올해로 결혼한지 35년 차에 접어든 재계 대표 잉꼬부부다. 두 사람의 만남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재현 회장과 아내 김희재 여사는 미팅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워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느 연인들처럼 꽁냥꽁냥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고 1984년 결혼에 골인했다.
물론 이재현 회장이 재벌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벌가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1960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그렇게 부부가 됐다.
7. 이재현 회장에게 신장 이식해준 사람은 바로 아내 김희재 여사다
6년 전인 지난 2013년 8월 1600억대 세금 탈루와 횡령 등 혐의로 구속수감됐던 이재현 회장은 아내 김희재 여사와 함께 나란히 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이재현 회장은 당시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어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여기에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알려진 '샤르코마리투스(CMT)'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까지 앓고 있어 최악이었다.
아내 김희재 여사는 아픈 남편 이재현 회장을 위해 신장 이식해주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5시간의 긴 수술 끝에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아픈 남편 이재현 회장을 위해 신장 이식 수술을 자처한 아내 김희재 여사의 모습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진심은 한결같다.
8. 이재현 회장이 지켜오고 있는 경영철학은 '인재제일(人材第一)'이다
이재현 회장이 경영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켜오고 있는 경영철학이 있다. 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누누히 강조해왔던 '사업보국(事業報國)'과 '인재제일(人材第一)' 기업가 정신이다.
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살아생전 이재현 회장에게 거듭 강조해 왔던 '사업보국'이란 '사업으로 국가사회에 기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업 이윤을 사회로 환원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재제일'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재를 적극 발굴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재현 회장은 선대회장의 가르침을 받들어 사회복지법인 CJ나눔재단과 CJ문화재단 등을 설립해 나눔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CJ문화재단은 특히 한국에 건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인재제일' 경영철학을 녹여 음악과 영화, 뮤지컬, 연극 등 각 대중문화 분야의 인재를 발굴 및 육성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