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짐을 싸서 공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이 들떠 어쩔 줄 모른다.
그렇지만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곧바로 '인내'의 시간이 시작된다. 어지간히 비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앉아있는 게 고역이기 때문이다.
나름 '비행 고수'라 자부하는 사람 중에서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맥주나 와인을 한 잔 마시고 푹 자는 편을 택하는 이도 많다. 알딸딸하게 술이 올라오면 얼른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면 왠지 평소보다 빨리 취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아닌지, 비행기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한 번 파헤쳐 봤다.
1. 기내에서 술을 마시면 더 빨리 취한다?
비행 중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더 금방 취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과거 한 심리학자는 "높은 고도에서 마시는 칵테일 한 잔은 지상에서 마시는 칵테일 서너 잔과 비슷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고도가 높으면 산소가 희박해 뇌로 전달되는 산소량이 부족해지고 그로 인해 더욱 빨리 취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도에 따른 신체적 변화가 큰 사람일수록 숙취도 더 심하게 느낀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진에어 승무원 A씨는 인사이트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기내에서는 승객이 더 빨리 취할 가능성이 있어 주류 제공을 3회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김순배 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교수 역시 "저기압과 저산소 상태인 기내에서는 더 빨리 취하고 숙취가 심하기 때문에 평소 주량보다 훨씬 적게 마셔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물론 이것이 완전한 '거짓'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알코올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고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전문가의 경우 비행기에서 더 빨리 취하는 느낌이 드는 건 철저한 '플라시보 효과(실제 효능은 없지만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특정 증세가 나타나는 일)'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인천국제공항 의료센터 관계자는 인사이트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기압 차이에 따른 신체 반응 정도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며 "더 빨리 취한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긴 하지만 절대적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고 밝혔다.
결론은 고도에 따른 신체 변화가 예민한 사람은 빨리 취할 수 있고 둔감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2. 기내에서 흡연은 안 되지만 재떨이는 있다?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담배꽁초를 버릴 때 쓰는 '재떨이'는 있다는 점이다.
기내 흡연은 규정상 '절대 금지'가 맞지만 대부분의 비행기 화장실 문 쪽에는 재떨이가 있다. 혹여 담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승객이 있다면 담배꽁초라도 안전하게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꽁초에 남은 불씨가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고, 비행기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그대로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객이 담배를 몰래 피울만한 장소인 화장실에 의무적으로 재떨이를 두고 큰 사고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다.
3. 기장과 부기장의 기내식 메뉴가 다르다?
기장과 부기장에게는 서로 전혀 다른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이 제공된다.
만에 하나 음식에서 문제가 생겨 기장과 부기장 모두가 배탈, 설사, 식중독 등으로 고생하게 된다면 운항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기내식과 관련한 비밀은 또 있다. 각 항공사가 고객 유치를 위해 기내식 메뉴에 공을 들이고 있으나 기내식을 맛없다고 느끼는 승객이 대부분이다.
항공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진실은 비행 '환경'에 있다.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는 미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또한 시끄러운 비행기 엔진 소음이 맛 신호를 혀와 침샘에 전달하는 안면 신경 중 일부를 둔하게 만드는 요인도 있다.
4.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배설물은 하늘에 뿌려진다?
비행기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싼다'. 이들이 내보낸 배설물은 대체 어디로 갈까.
간혹 비행기에서 생산되는 배설물이 공중에 뿌려진다고 추측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완전한 '오해'다.
항공사는 비행기 내부에서 나온 배설물을 지상에 착륙할 때까지 오물 탱크에 모으고, 공항에 도착한 후 관을 연결해 배출한다.
간혹 지상에서 "비행기에서 버린 오물을 맞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새의 배설물이거나 항공기 기계 장치에서 나온 기름일 가능성이 크다.
5. 번개를 맞으면 비행기가 추락할 수 있다?
자신이 탄 비행기가 번개에 맞지는 않을까 걱정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괜한 걱정이다.
비행기의 외피는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는 알루미늄 등으로 제작됐을뿐더러 비행기에는 전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정전 방전기'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매년 1회 혹은 비행시간 1천 시간마다 한 번씩 비행기가 번개를 맞지만 거뜬히 견딜 수 있다. 승객 역시 비행기가 번개를 맞았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번개에 맞은 후 비행기가 착륙하면 반드시 기체 점검을 통해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따라서 연결 편이 결항하거나 지연 운항하는 불편을 겪을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