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현대家' 3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9월 그룹 수석 부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정의선 체제'를 구축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실적 부진으로 지난 2018년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낸 현대차그룹의 '구원투수'로 나섰기 때문이다.
혹자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당연한 과정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이 지워졌다는 점이다.
실적 개선, 강남구 삼성동 GBC 착공 등 올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정 부회장. 정 부회장이 올해 중 꼭 풀어야 할 과제 4가지를 모아봤다.
1.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 올 상반기 중 착공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숙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 건립.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4년 9월 한국전력으로부터 서울 삼성동 부지 7만 9,342㎡(약 2만 4천평)를 10조 5,500억원(평당 4억 4천만원)에 매입한 이후 GBC 건립을 계속 추진했지만 관련 기관 심의에 막혀 좌초 위기에 몰렸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나섰다.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 민간 기업 투자 지원 대상에 GBC를 포함시킨 것이다.
경제 효과와 집값 상승 등 부처간의 이견이 있었지만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GBC 건립을 통해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GBC 건립은 한층 속도가 붙게 됐다.
특히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로 GBC 건립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서울시가 GBC 조기 착공을 위해 인허가 절차를 8개월에서 5개월로 단축할 수 있도록 행정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년 넘게 지체됐던 GBC는 올 상반기 중 착공이 가능하게 됐다.
총 사업비 3조 7천억원이 투입될 예정인 GBC 건립은 2023년 중 완공될 예정이다.
GBC는 105층 높이의 빌딩 1개와 35층짜리 호텔·오피스텔 1개, 6~9층 컨벤션·공연장 3개 등 총 5개 빌딩으로 구성된다.
특히 105층 빌딩 높이는 569m로 현재 국내 최고인 123층 롯데월드타워(555m)보다 14m 더 높다. 롯데월드타워를 제치고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것이다.
또한 개발이 완료되면 265조원에 달하는 경제 효과와 122만명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GBC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2. 지배 구조 개편
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수석 부회장으로 임명된 후 빠르게 '정의선 체제'를 구축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산적해 있는 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그룹 지배 구조 개편'이라는 '큰 숙제'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해 모비스를 최상위 지배 회사로 두고,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 구조 개편안을 내놓고 이를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지배 구조 개편 작업이 무산됐다.
그런 가운데 최근 현대차그룹이 현대오토에버 상장을 추진하는 등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현대오토에버는 정 부회장이 지분 19.46%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의 시스템통합(SI) 업체로 상장이 이뤄질 경우 정 부회장의 '실탄' 확보에 도움이 된다.
금융 업계에서도 글로비스가 현대오토에버와 합병해 기업 가치를 높인 후 현대모비스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밖에 현대건설과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설 또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설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엘리엇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지만, 만약 지배 구조 개편에 성공할 경우 정 부회장은 규제 리스크와 지배 구조 관련한 주가 불확실성을 털어낼 수 있다.
또 경영권 승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3. 실적 개선
정 부회장이 당장 직면한 과제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3분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터키발 경제 위기가 신흥국으로 확산되고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계속된 것이 이유였다.
지난해 판매 실적도 부진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연간 판매량 목표치로 755만대(현대차 467만 5천대·기아차 287만 5천대)를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739만 8,975대(현대차 458만 6,775대·기아차 281만 2,200대)에 그쳤다.
물론 최근 3년간 이어진 판매량 감소세에서 반등한 점은 위안거리이지만,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 환경이 긍정적이지 못해 현대·기아차의 고민은 깊다.
정 부회장은 올해 13개의 신차 출시를 통해 지난해 부진을 겪었던 중국 및 미국 시장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사업을 조기에 정상화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을 위한 대응력을 강화해야 하는 도전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우수한 품질과 상품성을 갖춘 총 13개의 신차를 출시해 미국과 중국 등 주력시장의 사업을 조기에 정상화하고, 인도, 아세안 등의 신흥 시장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제네시스'는 중국, 유럽 등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금년 출시되는 SUV모델을 비롯한 라인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부회장은 이와 함께 내실 경영을 위한 군살빼기에 돌입, 경영 효율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 군살을 제거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업별 글로벌 시장에서의 독자적인 생존력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4.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는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와 복지, 보육 시설 등 복리 후생을 지원해 부족한 임금을 보전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2018년 현대차가 '완성차 공장 설립 투자 의향서'를 제출하며 마침내 현실화되는 듯했지만 향후 5년간 임금을 동결한다는 내용에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그러던 중 문 대통령이 최근 '광주형 일자리' 사업 재추진 필요성을 언급해 정 부회장의 부담이 커졌다.
대통령이 직접 해당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 만큼 현대차도 마냥 손 놓고 있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현대차 혼자의 힘만으로 진행하기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광주시 그리고 현대차 노조가 협조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데 이견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협상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