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직장인, 특히 신입사원이라면 복사기 앞에 서서 각종 최첨단(?) 버튼은 보고 정신이 혼미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꼽히며 늘 사무실 한 켠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복사기.
용지라도 없는 날엔 우리를 '멘붕(멘탈 붕괴)'에 빠뜨리는 소중한 복사기는 1960년 처음 그 역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신도리코'로 사명을 변경한 신도교역으로 말이다.
한국 복사기 시장의 '살아있는 역사' 신도리코
고(故) 우상기 전 회장은 1960년 신도교역을 처음 만들었다. 1964년 한국 최초의 복사기 'Ricopy 555'를 개발해 본격적으로 복사기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신도리코는 1969년 일본의 리코와 기술 제휴를 맺고 회사 이름도 '신도리코'로 바꾸면서 새로운 도약에 성공했다.
1975년에는 국내 최초의 보통 용지 복사기를, 1981년에는 국내 최초의 팩시밀리를 만들어내며 각광을 받았다.
우 전 회장의 아들이자 현재 신도리코 대표를 맡고 있는 우석형 회장은 1980년 신도리코 기획실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아버지인 우 회장이 군 복무를 마친 바로 다음 날 아들을 회사로 불러내 일을 가르쳐준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우 회장은 그 뒤로 줄곧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고, 2002년 우 전 회장이 타계한 이후 2003년 회장에 취임했다.
'3무 경영' 중시하고 R&D에도 힘 쏟아
우 회장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건 '내실 경영'이었다.
신도리코는 무적자·무차입·무어음을 중시하는 '3무(無) 경영'으로 부채 비율 0%를 기록하는 등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한다.
기술 개발과 투자에도 힘을 쏟았다. 신도리코는 1982년 기술연구소를 만들어 연구원들을 대거 영업하고 이를 업계 최고의 R&D 센터로 성장시켰다.
그 결과 신도리코는 복사기 시장에서 한 단 번도 타사에 점유율 1위를 내준 적이 없는 '부동의 탑'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인지도, 브랜드 만족도, 애프터 서비스 부문 모두 최고의 업체로 꼽힌다.
매출도 단연 돋보인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신도리코는 5,58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글로벌 브랜드 'SINDOH'로 세계 시장에서 한 발 더 도약
수출도 잘 나간다. 1995년 우 전 회장은 일찌감치 '1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4년에는 우 회장이 아버지를 이어 '3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는 중국 청도 공장을 가동해 글로벌 생산 시스템을 갖췄고, 2010년 중국판매법인를 설립한 이후 북경, 상해를 비롯한 전역에서 활발한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사이 2008년에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 글로벌 브랜드 'SINDOH'를 발표하며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한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2012년 미국지사를 설립했으며, 2015년부터는 베트남 하노이 공장을 준공 및 가동해 아세안 시장 활동 영역도 크게 넓혀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까지 입지를 다지며 국내외 복사기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신도리코. 아버지를 이어 안정적인 경영을 지속하는 우 회장의 모습이 세습의 '좋은 예'로 불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