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기술력과 업적을 보유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독일 자동차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메르세데스-벤츠(벤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각별'이 트레이드마크인 벤츠 자동차를 갖길 원하며, 또 '고급차'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정도로 벤츠는 자동차의 대명사격으로 자리잡은 브랜드이다.
실제 벤츠는 독일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중 압도적인 기술력과 업적을 보유하고 있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개발해 자동차 역사의 시작을 알렸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부끄러운 과거
이런 이유로 벤츠는 '자동차의 시작과 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사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20세기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다는 것.
자동차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히틀러는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도 유달리 벤츠를 '사랑'했다.
히틀러가 벤츠를 사랑했던 이유는 벤츠 창업자인 칼 벤츠가 '독일인'이었고 또 벤츠의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스러움'을 원하는 자신과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유달리 벤츠를 '사랑'했던 히틀러
히틀러는 나치를 앞세워 독일 정권을 장악한 193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까지 '벤츠 770 리무진'을 애용했다.
자신을 위해 특별히 '방탄차'로 제작된 이 차를 '27대'나 갖고 있었을 정도.
그는 사열식 때마다 벤츠 770 오픈카를 타고 등장했고, 심지어 전쟁 중에는 벤츠 770 리무진을 6바퀴형으로 개조해 타고 다닐 정도로 '벤츠 마니아'였다.
이 같은 벤츠를 향한 히틀러의 남다른 사랑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특혜'로 이어졌다.
전쟁이 터지자 나치 정권은 벤츠에 자동차뿐만 아니라 비행기, 잠수함, 전차, 트럭 등 엔진이 들어가는 모든 군수 물자를 생산하도록 했다.
강제 노동자들 착취해 엄청난 수익 거둬
이 과정에서 벤츠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고, 강제 노동자들을 착취해 엄청난 수익도 거뒀다.
하지만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벤츠는 함께 몰락했다. 폭스바겐, BMW, 포르쉐 등 독일 자동차 기업들과 함께 '전범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
또한 연합 군정에 의해 약 1년 6개월간 조업 중단 명령을 받아 존폐 위기에 놓였다.
자신들을 향한 여론이 매우 안 좋고 또 회사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벤츠는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부정적인 여론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실제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에 위치한 벤츠 박물관에는 '전범 행위'에 대한 별도의 공간이 있으며, 공식 사료집에도 이를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 벤츠의 경우 지금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대폭 제공한다고.
"'과거의 잘못'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벤츠는 '나치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전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로 거듭났다.
현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벤츠가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벤츠의 모든 임직원들은 한 목소리로 "'과거의 잘못'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잘못을 잊고 반성하지 않을 경우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강제 동원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3차 소송의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태도와 확연한 대조를 이루는 대목.
'역사에 대한 반성과 기억'이 성공의 밑바탕
아무튼 벤츠는 과거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잘 극복해내고 '명품 자동차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이런 역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국내 피해자들의 사과를 싸그리 무시하는 일본 전범 기업들이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
벤츠가 독일을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데에는 '역사에 대한 반성과 기억'이 밑바탕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