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을 홍보맨들의 '냉혹한 오너'로 만든 '사건'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신세계 그룹을 총괄하던 부사장을 사전에 말 한마디 없이 집에 보낸 충격적인 사건으로 홍보업계에선 아직도 레전드 갑(甲)으로 꼽히죠."


국내 대기업들의 연말 인사 시즌이 되면 홍보맨들 사이에서 퇴직 임원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가 실종된(?) 사건으로 기억되는 충격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에서 홍보를 총괄하던 박찬영 부사장이 하루 아침에 자리에서 물러난 일이 바로 아직까지도 '레전드 오브 레전드'로 불린다.


사실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임. 시. 직. 원'을 줄인 단어가 '임원'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적 앞에서는 냉혹한 인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군대로 치면 '별'을 다는 것처럼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을 수 있어 직장인들에겐 대기업 임원이 꿈이자 로망이다.


성과가 좋으면 승진과 보너스가 두둑하게 보장되지만, 능력이 부족한 임원은 불과 1~2년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일상적인 현상인 탓이다.


그런 이유로 실적에 따라 희비의 곡선이 엇갈리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임원들에 대한 인사가 피도 눈물도 없이 가혹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들은 현직에 있는 임원 못지 않게 퇴직하는 임원에 대한 예우도 절대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뉴스1


기업의 민감한 내부 정보를 알고 있는 임원을 홀대했다가는 자칫 '검찰 수사'와 '구설수' 등 거센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퇴직임원에 대한 처우는 남아있는 직원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때문에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대기업에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그룹 홍보를 총괄하는 부사장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것도 그룹 오너의 '개인적인 홍보'까지 전담하던 부사장급 인사를 '당일'에 인사발령으로 성의없이(?) 처리한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것.


비운의 인물은 홍보업계와 언론계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신세계그룹의 박찬영 부사장이다.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성균관대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박 부사장은 신세계그룹에서 백화점과 할인점은 물론이고 회장인 이명희와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사장 등의 홍보까지 총괄했던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언론계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리기는 했지만 오너 정용진 부회장의 신뢰를 얻고 그룹에서 부사장까지 오른 성공한 홍보맨으로 꼽혔다.


특히 정용진 부회장이 전 부인이었던 탤런트 고현정 씨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박찬영 부사장은 놀라운 '홍보 능력'을 발휘해 오너 일가의 강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부사장은 신세계그룹 내에서도 오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당하면서 언론과의 매끄러운 관계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2016년 11월 말 박 부사장은 회사에 출근했다가 해고를 통보 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고위 임원에 대한 인사는 발표에 앞서 전화 또는 대면으로 사전 통보하는 게 관행이지만, 박 부사장은 당일이 거의 다 되어서야 자신의 인사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스1


한 언론계 인사는 "당시 박찬영 부사장이 돌연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언론계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일이 있었다"며 "너무 갑자기 이뤄진 인사인 탓에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한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언론과 업계에서는 다양한 '소문'과 '말들'이 오갔지만 사실 누구도 공식적으로 입 밖에 꺼내서 말하지 못했다.


도대체 박 부사장이 왜 하루 아침에 자리에서 밀려나게 됐는지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다만 홍보를 총괄하는 박 부사장에 대한 인사를 '오너'인 정용진 부회장이 몰랐을리 없고 최종 승인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박 부사장은 그렇게 집으로 갔지만 여파는 적지 않았다. 예전에는 홍보를 하는 임원에 대해서는 그룹 내에서도 총수들이 각별히 '후일'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런 관행이 완전히 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산그룹에서 홍보를 총괄했던 김진 부사장은 퇴임 후 두산베어스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동안 고생했던 노고에 대해 오너들이 살뜰히 챙긴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김진 사장은 서울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하고, 78년 동양맥주에 입사, 97년부터 두산 홍보실 상무, 2003년부터는 두산 홍보실 부사장을 역임해 왔다. 


자신의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그룹 홍보에 올인했던 김진 사장의 노고를 오너들이 끝까지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하지만 신세계그룹의 경우는 두산그룹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인사가 단행된 이후 신세계그룹 내에서는 "결국 오너의 입장에서는 부사장급 직원도 머슴처럼 부리고 필요 없으면 내쫓아버리는 그런 부품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박 부사장이 퇴직한 이후 그 자리를 그룹 홍보와 이마트는 이달수 상무가, 신세계백화점은 장혜진 이사가 물려받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박 부사장이 물러난 뒤 신세계그룹의 홍보실이 예전만 못 하다는 소리가 기자들 사이에서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후폭풍이었던 걸까?


기자들과 홍보맨들은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탓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그 배경을 조심스럽게 해석하고 있다. 


오너를 위해서 몸바쳐 열심히 해봤자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처럼 쓸모가 없으면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쩌면 홍보실 내부에 만연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홍보업계 한 관계자는 "박 전 부사장의 선례로 봤을 때 아무리 임원을 달아봐야 결국 50대 중반의 나이에는 집에 가야하는 처량한 신세가 아니겠냐"고 푸념했다.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아직도 정확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를 생각했다면 오너 정용진 부회장이 좀더 세심하게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를 생각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사철인 요즘도 신세계그룹 내에서는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족(蛇足)이지만 이달수 상무가 총괄하는 신세계그룹 내에서 최근 문화일보 기자 출신인 김재곤 씨가 상무로 승진을 했다.


김 상무는 신문과 포털을 오간 미디어업계 출신 홍보인으로 독특한 경력의 인물이다.


문화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네이버 정책실 및 미디어플랫폼센터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5년 신세계 홍보팀에 합류해 1년 뒤 상무보로 승진했으며 최근 인사로 2년여 만에 한 계단 더 올라서게 됐다.


그래서인지 신세계그룹 내에서 '세대 교체'의 움직임이 조용히 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