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형제의 난'은 재벌가 관련 이슈에서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등장하는 소재다.
한때는 사이좋은 가족이었지만 어느새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나빠져 버린 재벌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해왔다.
이런 와중에 '형제의 난'과는 완전히 반대로 '우애 경영'을 보여주는 재벌도 있다.
막대한 재산을 놓고 싸우는 일도, 어마 무시한 권력을 두고 다투는 일도 없었던 이들.
'형제 경영'의 진수를 보여준 재벌가의 기업들을 지금부터 한 번 만나보자.
1. 현대백화점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은 유독 우애가 좋기로 유명하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조부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다.
정 회장은 2007년 만 35세의 나이에 회장직을 승계해 국내 30대 그룹 가운데 최연소 총수로 이름을 올렸다.
정 부회장은 2012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형제 경영의 시작을 알렸다.
현재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업 전반을 견인하고 있으며, 정 부회장은 현대홈쇼핑 등 비유통업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실제로 우애가 정말 남다르며, 형제가 모두 소탈하고 겸손한 성격이다"라고 전했다.
2. SK그룹
SK그룹의 창업주 故 최종건 회장은 세상을 떠나기 전 동생인 故 최종현 회장에게 자신의 세 아들(최윤원, 최신원, 최창원)을 부탁했다.
최종현 회장은 경영을 이어받아 SK를 굵직한 대기업으로 키우는 동시에 형의 유언대로 세 조카를 살뜰히 챙겼다.
이후 1998년 최종현 회장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는데,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형제의 난'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아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이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맏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SK 총수에는 사촌동생 최태원 회장이 적임자라며 믿고 맡기면서 경영권 승계는 그야말로 '깔끔하게' 이뤄졌다.
'큰형' 최신원 회장의 리더십 덕분에 SK 형제들은 지금까지도 우애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3. LS그룹
범 LG그룹 가운데 하나인 LS그룹은 사촌끼리 그룹 총수를 번갈아 맡는 '사촌 경영'을 하고 있다.
LS그룹은 LG그룹의 창업주인 故 구인회 회장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들(故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명예회장)이 LG로부터 계열분리해 만든 그룹이다.
이들 '태평두 삼형제'는 서로 돌아가면서 경영을 맡는다는 전통을 쌓고 그룹을 함께 이끌었다.
이 뜻을 받들어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홍 LS꼬동제련 회장 역시 10년간 그룹 총수를 맡다가 지난 2013년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열 LS그룹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구자열 회장 또한 2022년 구두회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 회장에게 그룹 경영을 넘겨줄 것이 유력하다.
한편 LS그룹은 최근 단행된 2019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4. GS그룹
GS그룹은 지난 2004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했다.
故 허만정 LG그룹 공동 창업주의 3세들이 공동으로 경영하는 지배구조로, 경영권을 둘러싼 별다른 분쟁 없이 현재의 허창수 회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3세 경영자들은 주요 계열사의 회장이나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가족 경영'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너 3, 4세들이 GS그룹 지주회사인 ㈜GS의 지분을 조금씩 골고루 보유 중이다.
현재는 4세 경영자들이 점차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연말인사를 단행하면서 오너 4세인 허세홍 GS글로벌 사장을 GS칼텍스 대표이사로, 허용수 GS EPS 대표는 GS에너지 대표로 승진시켰다.
이렇듯 GS그룹은 사촌형제들이 모여 공동 경영을 이끄는 구조로 볼 수 있으며, 회장 직책 역시 절대권력이라기보다는 그룹의 대표자 역할 정도로 정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