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가 연쇄 살인범 정남규를 설득한 한 마디

(좌) 정남규 / 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권일용 전 경감 / YTN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도와주러 왔다. 누구와 살고 있는가?"


2006년 4월 22일 오후 1시 영등포경찰서 진술녹화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경감이자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이자 범죄학 박사 권일용이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운을 뗐다.


그의 앞에는 왜소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마가 벗어지고 옆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초라한 모습의 한 남자. 바로 13명을 죽인 살인마 정남규였다.


권일용은 범행 동기를 물었다. 그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 했지만 경비가 심해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말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묻는 권일용의 말에 그가 말했다. "없이 사는 게 잘못입니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답변이었다.


권일용은 그가 연쇄살인마가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교도소 복역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의 범행은 주로 자신보다 힘없는 여성이나 남자아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내린 정남규에 대한 결론은 '소심한 공격성'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억압하며 권위를 찾는 그가 생면부지의 드센 범죄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 판단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그 스트레스는 출소 후 또 다른 범죄로 이어졌다.


정남규는 스무 살인 1989년과 다시 5년이 지난 1994년 특수강도와 절도죄로 체포됐으나 실제 복역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복역하기 시작하자 복역과 출소는 끊이지 않았다.


1996년 2년 6개월, 1999년 2년, 2002년 10개월. 총 5년 4개월. 2002년 절도죄를 제외하고 정남규가 저지른 다른 두 번의 죄목은 '절도 강간'으로 죄 또한 무거워졌다.


교도소 복역 중 정남규가 '괴물'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 권일용. 


그러나 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남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그의 마음을 열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OCN '보이스 시즌2'


"과거에 교도소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나는 잘 알 것 같다.


여기 형사들은 당신을 때리지 않을 것이며, 충분히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나와 계속 대화를 진행하겠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권일용의 말에 줄곧 냉정한 태도를 보이던 정남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감자들에게 맞은 것을 밝히며 자신의 범죄에 대해 기억하는 한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권일용은 "마치 큰 둑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YTN


이어 마음이 열린 정남규는 자신이 어렸을 때 성범죄를 당한 사실이며 여죄 등을 털어놓았다.


경찰이 실시한 심리테스트에서 정남규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피해 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해소하지 못한 그는 사회에 복수 의지를 불태우며 무차별적인 범행을 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검찰은 공소장에서 밝혔다.


해소하지 못한 열등감으로 아무런 원한 관계없이 '묻지마 살인'을 벌인 정남규.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사람을 죄책감 없이 죽인 그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프로파일러의 한 마디 말에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의 상황과 심정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정남규가 최초의 살인, 아니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있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알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살인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정남규의 일화는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이자 지난해 4월 은퇴한 권일용 전 경정의 사건을 다룬 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나와 있다.


해당 책에서 정남규는 2006년 6월 7일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으며 그해 9월 21일 서울남부지법이 사형을 선고했다고 적혀있다.


약 2개월 뒤인 같은 해 11월 초 정남규는 구치소에서 2심 재판부에 "사형을 빨리 집행해줬으면 합니다"라는 탄원서를 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흐른 2009년 11월 어느 날.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 정남규는 교도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