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미군 비스켓 얻어먹는 아이 보고 '국민 과자' 개발한 크라운제과 창업주

故 윤태현 크라운제과 창업주 / (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사진 제공 = 크라운제과


故 윤태현 크라운제과 창업주, 국민들 위해 '크라운산도' 개발


[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크라운제과의 창업주인 고(故) 윤태현 크라운제과 회장이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국민 과자'가 있다.


바로 크라운제과의 '크라운산도'다. 지난 1956년 크라운샌드가 출시한 배경에는 윤 회장의 남다른 애국심, 열정이 담겨있다.


해방 후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과자라고는 미군부대에서 암시장으로 흘러 들어온 미제가 전부였다. 윤 회장은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간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진 제공 = 크라운제과


10년 동안 '크라운산도' 개발에 전념한 윤 회장직접 과자 틀의 쇠 깎고 로고나 무늬도 새겨넣어


윤 회장은 '크라운산도'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약 10년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직접 과자 틀의 쇠를 깎아가며 과자 개발에 전념한 그. 당시 그는 구하기 힘들었던 최고급 밀가루와 우유 그리고 버터 등, 고급 재료를 산도에 투입했다. 


더불어 비스킷 표면에 볼록한 형태로 로고나 무늬를 넣고 비스킷 사이에 달콤한 크림을 넣는 작업까지 윤 회장이 하나하나 고심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Facebook 'CrownConf'


출시 후 폭발적인 반응…1인당 50개씩 먹을 정도 


처음 크라운산도가 출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그 맛을 본 사람들은 크라운산도에 푹 빠져버렸다.


전국민이 1인당 50개씩 사 먹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미군들도 본토 보급품 속 비스킷보다 크라운산도를 더 찾았다.


크라운제과 공장에 도매상들이 현금을 짊어지고 와서 과자가 생산되자마자 박스로 사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1970년대 크라운산도 포장 / 사진 제공 = 크라운제과


57년 동안 '국민 과자'로 자리 잡은 크라운산도


그런데 사실 '크라운산도'가 처음 출시됐을 때 네모난 모양이었다. 우리가 아는 '동그란' 크라운산도 모양은 지난 1980년대 들어서면서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크라운산도'의 이름은 한차례 바뀌기도 했다. 일각에서 '크라운산도'의 제품명이 일본어라고 지적했기 때문.


크라운제과는 한때 제품명을 '크라운샌드'로 바꿨다. 그러나 고객들이 이름을 어려워한다고 판단해 얼마 후 다시 '크라운산도'로 제품명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 샌드형 비스킷 '크라운산도'는 출시 이후 62년간 고객에게 사랑받아온 장수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크라운제과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