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나태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점이지만, 사랑을 하다 보면 안다.
힘껏 상대의 뺨을 때리는 대신, 따스하게 손을 마주 잡은 채 "수고했어, 고생했어" 다독이며 헤어져 본 이들이라면 안다. 상대를 위한 이별을 결심해 본 이라면 더더욱 잘 안다.
사랑해도 그만두어야 하는 때가 있음을.
상투적이라고 여길 만큼 보고 싶다고 마음껏 표현하던 관계는 꽃이 지듯 사라졌고 꽃이 진 자리에는 달콤한 열매 대신 견딜 수 없는 그리움만이 남았다.
그리워도 그 마음 전할 수 없으며 또 볼 수도 없다. 그 사람이 무얼 하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도 없다.
이제 아무 연락도 아무 소식도 없을 사람임에도, 그가 꽃같이 눈부시길 바라며 꽃보다 아래에 심긴 풀잎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당신.
그런 마음을 대변하는 시 한 편이 있다.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다.
그는 모르는 곳에 모르는 시간에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테다. 직접 볼 수는 없으니 다만 그려볼 수밖에 없는 빛깔로 은은하게 웃겠지. 아침처럼 말이다.
상대가 모르는 동안, 저녁처럼 고요히 숨 쉬고 있는 당신은 그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느낄 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의 하루는 그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설레던 봄과 절절 끓던 여름이 지났다. 서늘한 가을이다.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없는 당신이 멀리서 할 수 있는 걱정은, 가질 수 있는 바람은, 전할 수 있는 안부는 그리 많지 않다.
"부디 아프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