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사랑하는 사람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이들 눈물 왈칵 쏟게 만든 가을시 한 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어톤먼트'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나태주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우연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점이지만, 사랑을 하다 보면 안다. 


힘껏 상대의 뺨을 때리는 대신, 따스하게 손을 마주 잡은 채 "수고했어, 고생했어" 다독이며 헤어져 본 이들이라면 안다. 상대를 위한 이별을 결심해 본 이라면 더더욱 잘 안다.


사랑해도 그만두어야 하는 때가 있음을. 


상투적이라고 여길 만큼 보고 싶다고 마음껏 표현하던 관계는 꽃이 지듯 사라졌고 꽃이 진 자리에는 달콤한 열매 대신 견딜 수 없는 그리움만이 남았다.


그리워도 그 마음 전할 수 없으며 또 볼 수도 없다. 그 사람이 무얼 하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도 없다. 


이제 아무 연락도 아무 소식도 없을 사람임에도, 그가 꽃같이 눈부시길 바라며 꽃보다 아래에 심긴 풀잎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당신. 


그런 마음을 대변하는 시 한 편이 있다.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사랑이 찾아온 여름'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나태주


그는 모르는 곳에 모르는 시간에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테다. 직접 볼 수는 없으니 다만 그려볼 수밖에 없는 빛깔로 은은하게 웃겠지. 아침처럼 말이다.


상대가 모르는 동안, 저녁처럼 고요히 숨 쉬고 있는 당신은 그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느낄 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의 하루는 그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설레던 봄과 절절 끓던 여름이 지났다. 서늘한 가을이다.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없는 당신이 멀리서 할 수 있는 걱정은, 가질 수 있는 바람은, 전할 수 있는 안부는 그리 많지 않다.


"부디 아프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