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고객에게 1/2 가격으로 2배의 가치를 제공하겠다"
옷의 품질은 여타 브랜드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 거품은 쫙 빼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게를 운영한 덕분일까.
이화여대 앞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네 옷가게를 운영하던 사장님은 어느덧 연매출 12조원을 달성하는 대기업 회장님이 됐다.
괄목할만한 성과로 패션업계에 한 획을 그은 이는 바로 이랜드그룹 창업주인 박성수 회장이다.
'자수성가' 상징하는 기업이 되다
패션업계에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창업 스토리는 굉장히 유명하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창대하기 때문.
2평도 채 안 되는 보세 옷가게를 운영하는 남성이 유통공룡 이랜드를 이끄는 회장님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날 매출 12조원의 매출을 일으키는 대기업이 된 이랜드그룹의 역사는 1980년으로 올라간다.
'2분의 1 가격에 2배의 가치'가 불러온 성과
박 회장은 1980년 패션 사업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화여자대학교 앞에서 '잉글랜드'란 간판을 건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옷을 판매하며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박 회장의 모토는 '1/2 가격에 2배의 가치'였다. 좋은 품질의 옷을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이겠다는 박 회장의 모토는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는 차별화 전략도 펼쳤다. 당시 '맞춤복' 위주였던 패션 시장에 박 회장은 대중적인 캐주얼한 의류를 선보였다. 그것도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에 말이다.
'가성비' 앞세운 '잉글랜드', 이랜드로 거듭나다
'가성비'를 앞세운 것은 물론 기존 시장과 차별성을 둔 덕분인지 그의 매장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이는 곧 법인 설립으로 이어졌다. 박 회장은 1986년 '이랜드'로 회사 이름을 지은 뒤 국내 최초로 의류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의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이에 박 회장은 1990년 시계 및 주얼리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사업다각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박 회장은 1994년 아웃렛 사업과 식품사업에도 진출했다. 1995년에는 호텔업에도 진출했다. 패션으로 시작한 사업이 유통업으로, 식품사업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유통공룡 이랜드
박 회장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2003년 인수한 뉴코아백화점을 아웃렛으로 전환, 본격적인 아웃렛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스포츠 브랜드에도 눈을 돌렸다. 박 회장이 이끄는 이랜드는 2008년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의 한국 판매권을 인수하면서 매출을 5년 만에 15배로 끌어오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의 성공 신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0년에는 동화백화점과 그랜드백화점 강서점을 인수하며 그룹의 규모를 더욱 키웠다.
현재 이랜드그룹은 패션을 비롯해 유통, 레저, 엔터테인먼트, 푸드, 건설,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대 앞에서 시작한 잉글랜드가 유통 공룡 대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박성수 회장의 이 같은 성공신화는 자수성가형 창업주로 주목받기에 충분한 사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