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만 해도 '금유'로 불렸던 분유분유라곤 일본 전범기업 '모리나가' 제품뿐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응애!"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한 아이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부모는 무탈하게 태어난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무한한 사랑으로 예쁘게 키우겠노라고 다짐한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타주는 분유와 사랑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매 순간 부모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큰 행복감을 주면서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우리네 어머니나 할머니는 본인이 육아에 뛰었을 때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 키우기 편해졌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지금은 대형마트를 비롯해 동네슈퍼에서도 '분유'를 구매할 수 있지만, 할머니 세대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기를 때만 하더라도 분유는 '금유'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전범기업이 제조한 분유 보고 개탄한 홍두영홍두영, 한국 아이에게 '국산' 분유 먹이겠다 결심
사실 한국 분유의 역사는 50여 년으로 그리 길지 않다.
한국 브랜드 회사가 분유를 출시하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이 제조한 수입 분유만 판매됐다. 그것도 전범기업으로 유명한 일본 '모리나가'사가 제조한 수입 분유가.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젖이 나오지 않는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전범기업에서 제조한 분유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한 남성은 개탄했다. 우리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전범기업의 분유를 먹는다는 현실이 퍽 서글퍼졌다고 한다.
결국 이 남성은 본인이 직접 '분유'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이 땅의 아이들이 더 이상 배를 곯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홍두영 명예회장, 1964년에 '남양유업' 설립1967년 1월 국내 최초 조제분유 '남양분유' 출시
배부르게 분유를 먹는 해외 아이들과 달리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어 쫄쫄 굶는 한국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이 남성은 1964년 3월 유제품 전문 회사를 설립한다. 바로 '남양유업'이다.
남양유업의 이름은 창업주인 이 남성의 본관을 딴 것이다. 남양유업을 설립한 이는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다.
특히 홍 명예회장이 회사를 설립했던 당시에는 정부가 낙농사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할 때였다.
'보릿고개'를 해결하면서도 농민들의 소득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홍 명예회장은 1965년 11월 충남 천안에 제1공장을 짓고 자가 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그리고 1967년 1월 국내 최초의 국산 조제분유인 남양분유가 홍 명예회장 손에서 탄생했다.
'대박 행진' 이어간 남양유업의 남양분유'전국 우량아 선발대회' 열며 '남양' 사명 각인
애국심으로 탄생한 제품이기 때문일까. 남양분유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대박에 힘입어 홍 명예회장은 1971년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었다. 해당 행사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 마련됐다.
아이를 생각하는 홍 명예회장의 '진심'은 통한 듯했다. 전국에서 튼튼하고 건강한 아이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열화와 같은 인기에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는 1984년까지 계속됐고, 생중계까지 되면서 소비자 사이에 '남양'이라는 사명이 제대로 각인됐다.
신제품 출시로 입지 다져홍 명예회장의 '낙농 외길'
홍 명예회장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1989년 로젠하임 치즈, 1991년 불가리스, 1994년 아인슈타인우유 등 다양한 히트상품을 출시하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주력 사업 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회사 임원들이 그에게 분유 캔을 만드는 계열사를 세워 시너지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홍 명예회장은 그저 본업인 유업에만 집중했다.
그의 이러한 '뚝심 경영'은 홍원식 회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줄 때도 이어졌다.
홍 명예회장은 큰 아들인 홍원식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에도 꼭 정치와 부동산 투기만큼은 하지 말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롯이 사업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아들에게 제대로 된 경영수업을 해 준 홍 명예회장은 향년 84세의 나이로 지난 2010년 타계했다.
홍 명예회장은 영면에 들었지만, 배곯는 한국 아이들에게 국산 분유를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낙농 사업을 시작한 뒤 오로지 한 우물만 판 그의 '뚝심 경영'은 길이길이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