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05일(목)

'문 없는 집'에서 사는 9살 진아네 위해 '새 보금자리' 마련 나선 희망브리지

대문도 없이 뻥 뚫린 집 입구 / 희망브리지


[인사이트] 윤혜연 기자 = 대문도 없어 뻥 뚫린 입구, 속이 훤히 비치는 유리로 된 문, 곰팡이가 핀 낡은 주방과 화장실, 아이가 빠지기 쉬운 깊은 우물이 있는 마당... 이 집에 두 모녀가 살고 있다.


최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전남 장흥에 사는 진아(가명‧9)와 필리핀에서 온 엄마 아일라(가명‧43)의 이 같은 사연을 공개했다.


진아는 7년 전 아버지를 여읜 후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간호사를 꿈꾸며 학교생활도 씩씩하게 잘 하고 있지만 엄마 없이 혼자 저녁을 보낼 때면 너무 무섭다. 진아가 사는 오래된 한옥은 대문도, 담장도 없는 뻥 뚫린 집이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유리로 돼 있어 커져만 가는 심리적인 불안감 / 희망브리지


시골 마을 재래식 가옥에서 홀로 딸을 키우며 사는 엄마 아일라는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2009년 결혼을 하며 한국으로 건너왔으나 평소 술과 담배를 즐기던 남편은 결혼 후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 혼자 있는 시댁도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기에 아일라는 진아를 데리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있는 읍내로 이사했다.


"테라피(마사지)도 하고 식당, 공장에 다 갔어요. 네일아트 일도 했어요. 애기를 혼자 키워야 하니까 이것저것 일을 했어요."


아일라는 서툴지만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제대로 된 담장이 없어 넝쿨식물을 키우는 상황 / 희망브리지


하나 뿐인 사랑하는 딸에게 걱정 없는 하룻밤이라도 선사해주고 싶은 아일라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지인의 소개로 월세가 없는 지금의 집에서 살게 됐으나 그만큼 오래되고 낡은 집이다.


길가 쪽으로 나 있던 대문은 고장나 헐어버렸고, 담장도 없어 집 앞으로 펼쳐진 농경지가 그대로 눈에 들어올 정도다.


담장 대신 넝쿨식물을 키워 조금이라도 집을 가려보려 했지만 턱없다.


낡은 각목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 / 희망브리지


특히 현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유리 미닫이문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마당엔 깊은 우물도 있어 진아가 혼자 있을 땐 발을 헛디디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모녀가 함께 씻지도 못할 만큼 좁은 화장실 때문에 진아는 누구보다 빨리 홀로 씻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의 집은 두 모녀가 살기에 너무나도 위험하고 열악하다.


아일라는 딸 진아에게 안전한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주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와 공공자활사업에 참여하며 꾸준히 생계활동에 힘쓰고 있다.


(좌) 귀화시험을 위해 아일라가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 교재, (우) 아일라 / 희망브리지


그러나 아일라가 요즘 한 달에 버는 돈은 70~80만여 원. 한창 크고 배울 나이인 진아의 꿈을 이뤄주기엔 빠듯하기만 한 금액이다.


특히 한국의 겨울은 따뜻한 필리핀에서 온 아일라에게 더더욱 매섭다.


"보일러에 기름을 30만 원 넣어도 한 달 조금 지나면 또 넣어요. 돈을 더 벌려면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아직 국적이 없어요. 한국말 공부해도 시험이 너무 어려워요."


국적 취득 이야기가 나오자 아일라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시험 한 번에 소요되는 비용은 30만원 정도. 벌써 세 번이나 떨어졌다.


매우 낡은 주방과 화장실 / 희망브리지


가르쳐줄 사람 없어 어렵기만 한 한국어,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아일라는 진아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고파 교재 한 권으로 귀화시험을 위해 열심히 독학한다. 매주 목요일은 다른 일을 재쳐두고 공부만 하는 날로 정하기도 했다.


진아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겨워하는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착한 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주변에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집주인도 이젠 땅을 매매할 예정, 언제고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다.


아일라는 진아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지만 보증금이 부족해 신청하지 못했다.


(왼쪽부터) 진아와 아일라 / 희망브리지


딸과 함께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너무나도 간절하다.


희망브리지는 열악한 집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진아네 모녀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선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부는 희망브리지 재단 홈페이지와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가능하다.


후원금은 진아네에 더불어 전남 장흥군 재난위기가정 5세대의 깨끗하고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에 사용된다.


진아네 가족에게 마련해줄 수 있는 집 참고사진 / 희망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