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1년간 여관서 합숙하며 개발한 '하이트'로 업계 1위 OB맥주 제친 박문덕 회장

(좌)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 / 하이트진로 (우) 하이트진로 맥주 모델 강다니엘 / Facebook '하이트진로'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 자연에서 흐르지 않는 '고인물'은 썩는다. 특히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게 변하는 산업에서는 변화하지 않으면 그저 '도태'될 뿐이다.


때문에 사람은 물론 기업들도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를 위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할 정도로 말이다.


'변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만년 2위'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전하던 회사가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한 것 또한 변화때문이었다.


'실패하면 끝난다'는 생각 하나로 어금니 꽉 깨물며 매일 변화를 추구한 '이 사람' 덕분에 2위에 머물렀던 이 주류회사는 업계 1위라는 달콤한 단맛을 볼 수 있었다.


하이트진로의 전신이자 1위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조선맥주주식회사를 수렁에서 끌어올린 이는 바로 박문덕 사장(현 하이트진로 회장, 69)이다.


YouTube 'logneun'


OB맥주에 밀려 '만년 2위'


故 박경복 하이트진로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지난 1991년 3월 조선맥주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박문덕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맥주주식회사가 내놓은 브랜드 크라운맥주는 동양맥주(OB맥주의 전신)에 밀려 2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류회사였다.


당시 크라운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20%를 밑돌았다. 크라운맥주와 동양맥주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점유율만 놓고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임직원들은 '만년 2위'라는 꼬리표에 별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 타이틀에 만족하는 듯했다.


크라운맥주 / YouTube '옛날TV'


계속되는 2위에 '절박함' 느끼다


모두가 괘념치 않는 상황에서 박 회장은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종래에는 '의문'이 커졌다고 한다.


그의 의문은 심플했다. '왜 크라운맥주가 안 팔리는가'.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의문을 품은 박 회장.


박 회장은 의문을 풀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 슈퍼마켓을 통째로 빌려 오비맥주와 크라운맥주를 시음하는 테스트였다.


크라운맥주 / YouTube '옛날TV'


결과는 놀라웠다. 단순 '맛'만 놓고 비교했을 때에는 크라운맥주가 오비맥주에 뒤지지 않았다. 상표를 가리고 테스트한 결과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5대 5로 양분됐다.


그러나 상표를 붙이자 결과는 또 바뀌었다. 1대 9. 참패였다.


맥주의 맛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였다.


박 회장은 이때 절박함을 느꼈다고 한다. 더구나 본인이 사장으로 취임, 경영에 발을 디딘 터라 고전하고 있는 회사를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듯하다.


YouTube '광고고전'


여관서 합숙하며 1년간 신제품 개발 몰두…독한 '각오'로 진행


'더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박 회장은 마케팅 부서를 신설한 뒤 암암리에 신제품 출시 준비에 들어갔다.


박 회장은 신제품 출시에 몰두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바로 여관 투숙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여관 한 채를 통째로 빌려 1년간 합숙하며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사활을 건 프로젝트였다. '만년 2위'를 떨쳐버리겠다는 독한 '각오'로 진행하던 신제품 개발이었던 만큼 박 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운전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Facebook '하이트진로' 


박 회장 야심작 '하이트' 출시되다 


그로부터 1년 여가 흘렀다. 그리고 박 회장은 1993년 5월 1일 신제품 '하이트'를 세사에 내놨다.


'만년 2위'를 탈출하겠다는 굳은 결심 덕분일까. 박 회장이 사활을 걸고 만든 맥주는 시장에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출시 3개월 후부터는 날개 돋친 듯 판매됐다. 만드는 족족 판매됐다. 그야말로 돌풍이었다.


YouTube 'HITEJINRO'


'천연 암반수' 마케팅 통하다


통통 튀는 막내 직원의 아이디어를 마케팅에 사용한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당시 직원은 '천연 암반수'를 마케팅 콘셉트로 잡아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해당 아이디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 '100% 천연 수로 만든 정말 순수한 맥주입니다'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그의 이러한 혜안은 통했다. 특히 당시는 '페놀 사태'로 1위 자리를 지키던 OB맥주가 곤욕을 치르던 때라 친환경적인 하이트맥주의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차별화 전략이 통한 것이다.


Facebook '하이트진로' 


종전의 대히트 '하이트'


'하이트'가 종전의 대히트를 치면서 박 회장은 사명도 바꿨다.


1933년 창립 때부터 사용하던 조선맥주주식회사라는 상호 대신 히트상품 '하이트'가 들어간 하이트맥주주식회사로 말이다.


이후 맥주에만 주력하던 박 회장은 '소주'에도 눈길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 8월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를 인수, 명실공히 종합 주류 전문기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해 만년 2위였던 회사를 국민 회사로 거듭나게 한 박문덕 회장의 이 같은 마인드는 업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