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 "우리 딸, 이번 추석에는 집에 내려오니?"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 하나로 상경한 20대 여성 김지영(가명, 25)씨는 최근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갑자기 북받쳐 오는 설움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김 씨는 "내가 너무 일을 잘하나 봐. 사장님이 이번 추석에 일을 해달라고 하도 간곡히 말씀하셔서 일을 해줘야 할 것 같아. 추석 끝나고 내려갈게요"라고 애써 밝게 말했다.
어머니와 전화를 끊자마자 김 씨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소위 '메뚜기 알바'로 불리는 '시간 쪼개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평일·주말 막론하고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근무하는 곳의 사장들이 '추석'에도 근무를 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자리도 마땅치 않기에 김 씨는 결국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추석에도 근무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취업준비생인데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만큼 겨우 얻은 이 알바 자리까지 없어질까 봐 걱정이 됐던 것이다.
"추석에도 일한다"
김 씨처럼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정상근무를 이어가는 아르바이트생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구직 포털 알바몬이 아르바이트생 1,0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번 추석 연휴에 근무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2.4%에 달했다.
추석 연휴에 근무를 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 60.7%는 추석 당일인 24일에도 '정상 근무'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왜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에도 일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로는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한다'와 '매장·사무실이 정상 운영해서 어쩔 수 없이 근무한다'는 답변이 각각 49.7%, 48.5%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쉬는 추석에 근무한다고 해서 '시급'을 더 받는 것은 아니었다.
추석 때 일한다고 답한 이들의 74.1%는 '평소와 비슷하거나 같은 수준'으로 시급을 받는다고 답했다.
대목인 추석에 근무를 하더라도 사실상 아르바이트생들에겐 큰 이익이 되지 않는 셈이다.
'메뚜기 알바' 뛰는 청년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알바를 하게 된 김 씨는 아르바이트 고용주들의 '꼼수'가 더 큰 문제라고 성토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인건비 부담에 따라 고용주들이 아르바이트생의 근무 시간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
가령 아르바이트생들이 본인들의 사정을 얘기하며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주들은 본인들이 읍소한다.
"근무시간을 늘리면 하루치 임금을 '주휴 수당'으로 줘야 되는데 너무 부담된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완곡한 고용주들의 태도에 김 씨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들은 한 사업장에서는 '월·수·금' 또는 '화·목' 같은 방식으로 하루 2~3시간씩 일하고 있다. '주휴 수당'을 안 줘도 되는 15시간 미만으로 말이다.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은 과거와 달리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 이를 두고 '메뚜기 알바'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나왔다.
일찍이 예견됐던 '메뚜기 알바'
이러한 상황은 일찍이 예견돼 왔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에 따라 2018년도 최저임금이 2017년도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확정될 때부터 잡음이 무성했다.
최저임금 시급이 2017년보다 1천원 넘게 인상되면서 '인건비'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자영업자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특히 많았다.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인건비 부담에 따라 대기업은 물론 자영업자들도 고용을 줄이거나 근로 시간을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그 예견은 곧 현실이 됐다. 올 8월 취업자 수는 3천 명에 그쳤다.
최저임금 인상이 쏘아 올린 신호탄, 알바 넘어 '일자리'까지 앗아가
'일자리 정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IMF 이후 최대 실업률, 일자리 참사, 최악의 고용쇼크라는 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 증발의 무게가 취준생들에게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분야를 막론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7급 공무원을 770명을 뽑는 시험에 3만6천명이 응시하기도 했다. 40대 1의 경쟁률. 취준생들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청년 취준생들의 어깨는 나날이 무거워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고 되레 그 수가 줄고 있다.
실효성 검증도 없이 국민 '혈세'만 쏟아부으면서 무차별적으로 인원만 늘리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취준생 김 씨는 알바를 하러 갈 채비를 하며 한숨을 쉰다.
'고용침체'로 원하는 곳에 취업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는데, 이젠 알바 자리까지 자신의 생활을 옥죄는 느낌이 든다고.
그저 김 씨는 부모님께 드릴 추석선물 세트를 양손 가득 들고 고향으로 내려갈 날이 속히 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하루빨리 취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 씨는 오늘도 집 밖을 나선다.